고민을 털어놓는 주인공의 사연이 지루해 리모콘을 들 때쯤 어김없이 반전이 펼쳐진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민으로 여겨졌던 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보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안녕하세요’는 이 같은 전개를 매우 즐기는 방송이다. 사연의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지인이 동반 출연하는 ‘안녕하세요’는 한 가지 고민을 갖고 상반된 입장을 취하는 양측의 시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간다.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엎치락뒤치락 하는 반전 전개는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다.
이는 지난 13일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말을 쏟아내는 수다쟁이 아빠가 등장한 가운데, 이로 인한 가족들의 불평과 성토가 이어졌다. 두 딸들과 아내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털어놓고, 드라마를 볼 때면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설명을 놓지 못하는 게 가족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아빠의 만행. 아빠의 말이 듣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 쓰면 이 이불마저 젖히고 이야기를 이어간다는 게 가족들이 전하는 고민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빠에게 마이크가 돌아가자 상황이 달라졌다. 말을 끊임없이 하는 건 맞지만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는 것. 몇해전 사업 실패를 경험한 뒤 남는 건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에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는 게 아빠의 고백이다. 가장의 날개가 꺾이는 경험을 했지만 음지에서 마냥 움츠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수다를 떨었다는 숨겨진 사연에 어느새 말하는 데만 정신이 팔린 눈치 없는 아빠는 사라지고 말았다. 딸들 역시 새삼 알고 있던 아빠의 고백에 고충을 털어놓던 입을 다물었다. 가족 사이에 생긴 갈등은 순서대로 자기 입장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그 크기가 현저히 줄어들 수 있었다.
이 같은 예는 여자 목소리를 지녀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이 소개될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물여섯 살 청년인 사연의 주인공은 트랜스젠더로 오해 받고,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떨어질 정도로 여성스러운 목소리 때문에 지장을 받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등장과 함께 고민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골수암 이식 수술을 받느라 아들의 건강에만 우선을 뒀던 부모에게 자식의 가느다란 목소리 따윈 고민 축에 속할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 아버지는 "아파트 한 채를 없앨 정도로 우리 아들은 비싸다"며 절박한 심정으로 자식의 병 수발을 든 때를 떠올렸고, 목소리 때문에 남모를 속앓이를 했던 사연 주인공의 얼굴에도 비로소 따뜻한 미소가 번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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