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배신은 인생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뒤흔들기 충분하다. 드라마 ‘구가의 서’에 등장하는 최강치(이승기 분), 박태서(유연석 분), 박청조(이유비 분) 3인도 예외는 아니다.
14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극본 강은경, 연출 신우철 김정현) 12회에는 되돌리기엔 너무 많이 엇갈려버린 세 남녀의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그려져 극에 대한 몰입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어릴 적 한 집에서 친남매나 다름없이 성장했던 세 사람은 조관웅(이성재 분)의 등장부터 미세한 틈새가 벌어지더니 박무솔(엄효섭 분)의 죽음 후 급속도로 어긋났다.
이날 방송에서 반인반수 강치는 형제처럼 믿었던 벗 태서의 배신으로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염주 팔찌까지 풀리자 은인의 딸이자 정인(情人)이던 청조 앞에서 신수로 변해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만다. 이 과정에서 무의식중에 태서를 공격해 가슴에 큰 부상을 입히고, 자신은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는다.

오빠를 죽이려한 한 자가 강치일리 없다며 “무섭다”, “괴물”이라는 말을 내뱉고, 외면하고 도망친 청조의 뒷모습에 그저 애처롭게 절규하는 강치. 믿었던 벗도 정인도 순식간에 모두 한 번에 등을 돌린 끔찍한 현실에 직면했다. 결국 자신의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신주의 힘에 폭주하던 때, 담여울의 손깍지가 한줄기 빛이 된다. 그리고 그는 마음 속으로 되뇐다.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상처 입은 태서와, 겁먹은 청조는 숲속에서 조관웅과 수하들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그날 밤 청조는 오빠 태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해 조관웅과 끔찍한 동침을 택한다. “내 것이 되어라. 허면 나 또한 네 것이 되어줄 터이니”라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 다음날 청조는 스스로 춘화관으로 걸어 들어가 천수련(정혜영 분)에게 말한다. “예기가 되겠다. 예기가 되어 내 인생을 다시 살고 싶다.” 청조의 인생이 새로이 바뀌는 순간이다.
여동생의 안위를 위해 친구를 배신하고, 결국 여동생의 하룻밤으로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한 입장이 된 태서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저 한스럽다. 결국 스승인 담평준(조성하 분)을 찾아가 눈물을 쏟으며 울먹인다. “겨우 이것 밖에 안 되는 제가 죽도록 밉고 싫습니다.” 향후 '구가의 서' 전개에 태서의 또 다른 변화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세 사람의 변화는 한 회 동안 급속도로 진행됐으며, 이는 총 24부작인 ‘구가의 서’가 다음주 13회를 앞두고 제2막을 열기 위한 초석이 되기에 충분했다. 20여년전 죽은 줄 알았던 서화(이연희)가 일본 상단을 이끄는 실질적 두목 자홍명(윤세아)으로 한국에 돌아오고, 땅 속에 묻혀있던 구월령(최진혁)은 천년악귀로 부활하는 모습이 예고됐다. 엇갈린 강치, 태서, 청조, 그리고 강치 곁을 지키는 여울, 돌아온 자홍명, 구월령의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 속에 ‘구가의 서’ 제2막이 드디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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