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인생 동안 그가 던진 가장 빠른 공의 구속은 137km. 선수 본인도 “140km 이상 던졌으면 예전부터 1군이었겠지요”라며 웃었다. 그러나 그는 야구 시작 이래 한 번도 다치지 않은 선천적 건강함과 넉살 좋은 친화력, 그리고 안정된 제구력이라는 큰 장점을 갖췄다. 두산 베어스의 ‘제이미 모이어’ 유희관(27)은 이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좌완이다.
유희관은 지난 19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2013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한화와 원정경기에서 2회 두 번째 투수로 구원등판, 6⅔이닝 4피안타 3볼넷 7탈삼진 3실점으로 선발급 역투를 펼치며 15-8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데뷔 첫 구원승으로 시즌 2승째다. 지난 4일 잠실 LG전에서는 5⅔이닝 5피안타 무실점투로 데뷔 첫 선발등판을 데뷔 첫 승으로 올린 바 있다.
장충고-중앙대를 거쳐 2009년 두산에 2차 6라운드로 입단한 유희관은 대학 시절 리그 최고의 좌완 에이스로 활약한 투수. 2008년 3월에는 베이징 올림픽 예비 엔트리에 아마추어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130km대 초반에 그치는 직구 구속으로 인해 오랫동안 저평가되었다.

데뷔 첫 2년 동안에도 유희관은 21경기에 나서 추격조로 잠깐씩 1군 마운드에 모습을 비췄을 뿐이다. 두산 입단 후 곧바로 치렀던 전지훈련에서 배짱투를 선보이며 당시 김경문 감독의 기대를 받기도 했으나 전지훈련 막판 페이스가 떨어지며 느린 구속의 단점을 계속 지적받아 중용되지 못했다.
그러나 상무 입대 후 그는 점차 달라졌다. 직구 구속이 이전보다 빨라지기는 했으나 그래도 135~137km 가량으로 느린 편이었다. 대신 투구 시 보폭을 좀 더 넓혀 투구 밸런스가 안정되며 좀 더 수월하게 중심이동을 이어갔고 볼 끝 힘도 스피드 이상으로 붙었다. 최저 70~80km대까지 떨어지는 초슬로커브도 강점이다. 스스로 “6kg 가량을 감량하면서 최적화된 투구 밸런스를 갖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이미 2군 무대에서는 타자를 갖고 놀던 제구력을 자랑하며 지난해 동료 오현택과 함께 상무 원투펀치로 활약했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이틀 전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투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롱릴리프로 나서 6⅔이닝 동안 106개의 공을 던진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혹사로도 볼 수 있는 데 유희관은 2009년 2군 무대에서도 이렇게 던졌다. 등판하기도 전에 몸을 사리는 다른 유망주들에 비해 유희관은 “괜찮아요”라며 긍정적 마인드로 지시에 임한다. 야구 시작 이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아팠던 적이 없을 정도로 선천적으로 유연함과 내구력을 갖췄다는 것은 유희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절친한 1년 후배 김현수는 유희관에 대해 “이 형은 다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라며 금강불괴 유희관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예전에 절친한 동료 5명이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4명이 몽땅 배탈이 났다. 희관이 형만 쌩쌩하더라. 희관이 형은 다치거나 잔병치레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라며 부러워한 김현수다. 팀에서 필수 자원이 된 만큼 관리를 잘해줘야 하는 것이 기본. 그래도 쉽지 않은 야구 인생 속에서 다치지 않았다는 점은 선수 본인이 부모님으로부터 제대로 물려받은 귀중한 재산이다.
불혹을 넘어 지천명(50세)의 나이까지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른 제이미 모이어는 130km대 초반의 평균 구속에도 불구, 포기하지 않으며 2001년과 2003년 시애틀 소속으로 각각 20승, 21승으로 전성기를 보냈다. 송진우 현 한화 투수코치도 젊은 시절의 강속구를 잃어버린 대신 날카로운 제구력과 스피드답지 않은 묵직한 볼 끝으로 2000년대에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2013시즌 초반에는 유희관이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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