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남들은 하나도 가지지 못한 한계를 무척이나 많이 가지고 있는 이가 있다. 그는 청각장애인에 어릴 적 이혼한 부모 탓에 외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그리고 10살이 지나서는 일본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왕따, 전교 꼴찌 등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와 같은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 기어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슈퍼 우먼이 됐다. 41세의 여인, 김수림 씨의 이야기다.
청각장애인, 4개 국어 능통자, 전 골드만삭스 직원 등 이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은 모두 김수림 씨와 관련된 것들이다. 지난 20일 오후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랑'은 그 누구보다 굴곡진 인생을 살았고 그 결과 이러한 수식어들을 얻어낸 김수림 씨의 삶을 브라운관에 담아냈다.
단순한 인간 승리의 스토리는 아니다. 그는 무한 긍정의 여인도, 타고난 천재도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보다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처지에 대해 끝없이 원망했다. 그러나 그가 이 상황에서 남들과 다른 것은 주저 않지 않고, 안주하지 않는 마음가짐이었다.

김수림 씨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아무도 없는 먼 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홀로 영국 행을 결심했다. 영어를 전혀 할 수 없었던 수림 씨는 그 곳에서 알파벳 A부터 공부했다. A부터 다시 배웠듯 그의 인생도 A부터 시작이었다. 김수림 씨는 그 곳에서 영국 언어학교 교장 루스 린던의 도움을 받아 2년 만에 영어를 마스터한다. 이후 스페인어까지 익힌 그는 4개 국어에 능통한 신기한 청각장애인이 돼 골드만삭스에 입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김수림 씨의 인생이 이렇듯 승승장구 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인간관계에 서툴렀고 언제나 외로웠다. 그는 골드만삭스에 일했을 시절에 대해 "나에게 농담 한마디라고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수림 씨 마음 속의 병을 치료해 준 것은 지금의 남편이었다. 그는 김수림 씨에게 무한한 사랑을 줬고, 가족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울타리인지를 느끼게 해줬다. 그로부터 시작된 사랑은 얼어붙었던 수림 씨의 마음을 녹여 어린 시절부터 계속돼 왔던 어머니에 대한 미움 조차 사랑으로 바꿔 놓았다.
김수림 씨는 지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퇴근 후 가족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 간혹 시골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가족과 함께 찾아간다. 유치원을 졸업한 딸 아리스의 공연을 찾아갔고 남편과 다정한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우울했던 청각장애인 외국인은 슈퍼 우먼이 돼 스스로의 삶을 새롭게 개척했다.
그에게 한계는 인생의 디딤돌이었다. 그 한계를 하나씩 딛고 올라가자 새로운 행복이 나타났다. 힘겨울 수록 더 강하게 밟고 일어섰고, 한 번 밟았던 디딤돌은 그의 성장에 놀라운 도움이 됐다. 인생이라는 긴 강을 건너고 있는 수림 씨에게 한계란 거쳐가야 할 과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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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랑'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