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영화들이 있죠. 관객들 중에는 우리 영화가 안 꽂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주연배우로 참여하면서 작품이 나쁘지 않았어요. ‘미나문방구’ 짱! ‘미나문방구’ 꼭 보십시오 라는 말 보다는 누가 봐도 어떤 사람이 봐도 괜찮은 영화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영화 ‘미나문방구’(정익환 감독)를 통해 수년 만에 대중 앞에 돌아온 배우 봉태규는 한결 담백해 보였다.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에 대해 떠들썩한 자랑이나, 대대적인 홍보를 하기 보다는 작품이 지닌 미덕을 넌지시 제시하며 배역의 소임을 다한 것에 긍정하는 정도였다. 3년 만에 대중 앞에 선 그는 꽤나 많이 달라져 있는 듯 했다.
◆ “흔들리지도 들뜨지도 말자”

“예전에는 이런 마음이 아니었죠. 나 보다는 주변을 더 많이 봤고, 이런 연기를 하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에 대해 신경 쓰는 편이었어요. 물론 다른 사람의 평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거기에 휘둘리면 중심을 못 잡는 건 분명하니까요. 나한테 집중하자. 그러면 흔들리지도 들뜨지도 않겠다는 게 요즘에 제가 하는 생각들이에요.”
이러한 생각들을 하기까지 봉태규가 보낸 시간들이 만만치 않았다. 전 소속사와 전속계약 분쟁을 겪었고, 오랜 기간 교제한 여자친구와는 결별했으며, 아버지의 부고를 경험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모진 시간들이 만든 결과가 지금의 한발 물러선 태도일지도 모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말 정말 싫어해요. 저 같은 경우는 어떤 계기를 통해서 알게 됐지만, 이런 경험들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깨우침을 얻는 때가 온다고 생각하니까요. 안 겪고 아는 게 훨씬 낫죠(웃음).”
생각에 변화가 이는 동안 연기관도 자연스레 달라졌다.

“쉬는 동안 작품을 보는데 배우의 리액션에 눈이 가더라고요. 예전의 저는 액션에 치중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들어주고 뭔가를 받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럴 때 마침 ‘미나문방구’ 시나리오를 받았고 제가 제안 받은 강호 캐릭터가 아이들이 뭔가 액션을 취하면 받아주는 역할이었어요.”
영화에서 강호는 문방구 구석에서 전자오락을 즐기는 다소 아이 같은 면모를 지녔지만, 초등학교 교사로서는 우여곡절 많은 아이들을 감싸고, 또 문방구 때문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초등학교 동창 미나(최강희 분)에게는 좋았던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전천후 캐릭터. 타이틀롤 미나에 비해 비중은 작지만 주인공의 액션에 리액션을 취하는 것이 강호에게 맡겨진 역할이다.
“비중 때문에 선택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분량이나 역할이 아쉽지는 않아요. 시나리오를 다 보고 하겠다고 한 건데 불만족스럽다니요. 앞으로도 괜찮은 작품에 캐릭터라면 비중이 어떻든 좋은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배우로서 가지고 있는 모든 욕심을 내려놨다는 건 아니지만, 이 작품을 할 때만큼은 비중이 아닌 역할에 충실하고 싶었어요.”
극중 캐릭터에 대한 높은 만족도는 촬영이 진행된 경주라는 배경으로 인해 배가 됐다. 한 장의 사진처럼 멀지 않은 과거에 머문 듯 한 경주의 풍광이 아날로그 감성이 풍부한 ‘미나문방구’ 속 세상에 저절로 몰입할 수 있도록 도움이 돼줬기 때문.
“서울에서 촬영을 하면 아무래도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게 되는데 지방 촬영의 경우 상주하기 때문에 충분히 작품 속 분위기에 젖는 장점이 있죠. 특히 이번 경주 같은 경우는 저희가 묵었던 숙소가 어떤 애틋한 정서를 줬어요. 그러다 보니 서울로 올라갈 때 어린 시절 방학동안 시골집에 머물다 아쉬운 마음으로 상경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또 촬영장이 제가 오랫동안 살고 있는 집과 동네 분위기가 나서 마음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요”
봉태규는 ‘미나문방구’로 3년 만에 컴백한 것을 시작으로 SBS ‘화신’으로 예능프로그램에도 진출하며 제대로 복귀 시동을 거는 중이다. 하지만 그의 예능 행보는 다소 의외기도 하다. 특히나 살벌한 예능시장에 그가 고정 MC로 발탁됐다는 사실은 봉태규 자신 또한 놀랄 만큼의 새로운 변화이자 도전이다.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연출자가 고정 MC 제안을 하면서 합류하게 됐어요. 제가 출연한 분량을 재밌게 봐서라고 하던데 저야 잘 모르죠. 제안을 받고 할까 말까 반신반의 하다 해도 되겠다 하는 지점이 있어서 수락했어요. 그런데 다른 MC인 신동엽, 김구라 선배님은 저더러 ‘계탔다’고 하시더라고요.”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요. 뭐가 됐든 활동을 할 겁니다. 우리 일이라는 게, 또 사는 게 뜻대로 의지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요.”
지난 2000년 데뷔해 연예계 생활도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겼다.
“계획대로 왔냐고요? 전혀요. 저는 배우를 꿈꿔본 적도 없고 얼결에 이 길에 들어섰어요. 그러다 어떻게 하나씩 무언가 쌓이기 시작했는데 의도하고 계획한 건 결코 없어요. 어찌 보면 재밌고 또 불안한 생활인데 이제는 거기에 대해서는 생각을 안 하려고요.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은 뭐가 되던 되겠지 하는 마음이랄까?(웃음) 재밌는 것만 하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없는 건 이제 안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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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