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 "'나인' 끝나니 오랜 연인과 헤어진 기분"[인터뷰]
OSEN 임영진 기자
발행 2013.05.21 15: 31

꺼져가는 향의 연기와 함께 치열하게 살았던 박선우는 가고 그 자리에 ‘배우’ 이진욱이 남았다.
이진욱은 지난 14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아홉번의 시간여행: 나인’에서 주인공 박선우로 열연을 펼쳤다. 그는 10주 동안 사랑하는 여인이 하루 아침에 조카가 되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가 친형이 되는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았다. 감정의 폭이 컸던 만큼 후유증도 진하게 남았다.
“원래는 촬영 끝나면 홀가분한 마음 반, 서운한 마음 반인데 이번에는 홀가분한 마음이 없고 서운한 마음이 더 커요. 오래된 연인하고 헤어진 기분이랄까요.(웃음) 촬영 내내 무거운 감정에 압도돼 있었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제대로 즐기고 싶었죠.”

극중 박선우는 최진철에게 살해 당한 줄 알았던 아버지의 살해범이 친형이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어머니는 정신을 놓는 아찔한 상황과 마주했다. 또 집안의 재산은 최진철(정동환 분)에게 넘어가는 불행을 겪었다. 이런 와중에 스마트한 지적 능력을 자랑하고 범접하기 힘든 뛰어난 비주얼, 청렴한 도덕성까지 가진 완벽한 인물로 그려졌다.
“선우는 리얼리티가 없어요.(웃음) 말도 안되는 불행을 가지고 있죠. 부모, 형제 다 잃고 딱 하나, 혼자 남았어요.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조건을 갖췄고요. 어떤 감정선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선우의 처지를 살피게 되니 바탕에 깔리더라고요. 다행히 제가 감정 표현에 서툰 편이라서 도움이 됐죠. 하하.”
 
정유미하고도 그랬고 조윤희하고도 잘 어울렸다. 이진욱은 드라마에 출연할 때마다 상대배우들과 열애설에 휩싸일 만큼 유별난 ‘케미’를 자랑했다. 훈훈한 비주얼의 조화이기 때문이라고만 하기엔 그 이상의, 설명하기 힘든 ‘무엇’이 이진욱에게 있다.
“하하. 상대 배우와의 호흡은 자세의 문제라고 봐요. 제가 사랑이 많은 편이죠.(웃음) 어느 순간부터 캐릭터에 몰입해 상대방에게 감정을 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정도까지는 커버가 되더라고요. 역할에 충실한 것,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로맨틱 코미디인 줄 알았던 ‘나인’은 뚜껑을 열어보니 인생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로 가득했다. 순간순간 이뤄지는 사소한 선택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이 극을 관통했다. 이런 내용은 캐릭터들에 역동성을 부여했고 이는 작품의 무게가 됐다. 한 마디로 ‘나인’은 연기하기 참 어려운 드라마였다.
“저는 마지막 대사가 기억에 남는데요. 그 대사를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어요. 소리로 내는 순간 감정이 소진해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거든요. 왜 안 좋은 일 있을 때 울다가도 어느 순간 눈물이 안 나오잖아요. 그런 느낌이었어요. 감정은 좋은데 이게 말을 안 하면 대사를 못 외우잖아요.(웃음) 고생했죠. 이번에 제가 운이 좋았던 건 굳이 감정을 어디서 가져올 필요도 없이 대본이 좋았어요. 대본과 연출력이 저를 100% 이끌어줬죠.”
‘나인’을 통해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들은 이진욱은 요즘 빈둥빈둥 거리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연말 쯤 다시 작품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말 ‘나인’은 저에게 행운이었어요. 송재정 작가님, 김병수 감독님이 부르신다면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돼 있죠.(웃음) 올해 말쯤에 작품에 들어갈 것 같은데 그 전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는 생각 중이에요. 우선은 좀 쉬려고요. ‘나인’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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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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