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차가 클 경우 도루를 하거나 번트를 대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지난 21일 잠실 두산-넥센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난 뒤 한 해설위원이 밝힌 야구계의 불문율이다.
이날 사건을 되돌아보면 강정호는 팀이 12-4로 앞선 5회초 1사 1,2루에서 2루주자로 서 있다가 유한준 타석에서 초구 스트라이크에 도루를 시도했다. 공이 너무 한가운데로 들어와 도루하기 좋은 타이밍은 아니었으나 이미 스타트를 끊은 강정호는 그 속도 그대로 3루까지 왔다.

그러자 투수 윤명준이 바로 다음 공으로 유한준을 몸에 맞는 볼로 내보냈다. 윤명준은 주심에게 경고를 받았으나 이어 김민성에게 초구에 머리로 향하는 빈볼을 다시 던져 어깨를 맞히고 퇴장을 당했다. 양팀은 잠시 격분해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다.
경기 후 강정호는 "3루 도루는 경기에 집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두산 선수들이 기만이라고 생각했다면 미안하다"고 밝혔다. 두산 측은 따로 의견을 내지는 않았으나 김진욱 감독이 "좋은 경기 내용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에둘러 말했다.
이번 일은 불문율과 현실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위에서 밝힌 불문율은 기준이 애매하다. 큰 점수차는 몇 점이 기준인가. 몇 회 정도가 돼야 큰 점수차에 경기가 기울어졌다고 판단할 수 있는가는 누구도 쉽게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최근 각팀마다 불펜이 약점으로 자리잡으면서 하루에 한 팀은 역전승을 거두고 있다. '역전의 명수' 넥센은 24승 중 역전승이 11번, 6회 이후 역전승이 9번이다. 넥센은 자신들이 역전을 해봤기 때문에 역전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으려 점수를 최대한 많이 내려고 했을 것이다. 강정호의 도루는 벤치의 사인이었다.
그러나 두산 쪽에서는 선발투수가 내려갔고 5회에만 이미 6점을 더낸 당시 상황에서 더 점수를 뽑으려고 한 넥센쪽의 작전이 상도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두산은 불문율이라고 생각했고 넥센은 불문율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결국 상처를 받은 것은 선수들이다. 넥센 선수들은 이날에만 5개의 몸에 맞는 볼을 기록했고 두산 선수들 역시 완패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3연전의 첫 날을 좋지 않게 시작해 앞으로의 2경기도 껄끄럽다. '이겨도 잘 이겨야 하고 져도 잘 져야 한다'는 야구계의 정설은 이날 불문율 논란 속에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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