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가의 서' 젊은이들의 사랑은 아프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5.23 14: 29

[유진모의 테마토크] MBC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 속의 사랑은 그 사랑들이 서로 어긋나 있어 슬프다. 삼류 양아치 구용갑(이창훈)은 백성주(채정안)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오매불망 한태상(송승헌) 뿐이다. 그런데 송승헌은 생애 처음으로 서미도(신세경)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녀에게 올인하고 있다.
 서미도는 한태상이 아주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대차이가 나고 이상이 달라 괴리감을 느끼던 중 서로 낭만 코드가 맞는 이재희(연우진)를 만난 뒤 그에게 푹 빠졌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반대편으로 화살이 향한 이 체인같은 사랑은 단 한 가지도 이뤄지지 않을 듯 쌍방향 소통이 아닌, 외길 방향으로 달린다.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 속의 사랑은 더 아프다. 이 속에는 악인은 없건만 그들의 사랑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달리 뒤죽박죽 뒤섞여 단 하나의 사랑도 이뤄질 기미가 없다.

구월령(최진혁)과 윤서화(이연희)의 사랑은 세상에 둘도 없을 것 같았다. 서로 워낙 뜨겁게 사랑한 두 사람이건만 윤서화가 구월령이 사람이 아닌, 신수라는 실체를 알고 난 뒤에는 180도 돌변했다. 그녀는 자신을 잡으러 온 담평준(조성하)에게 스스로 잡힌 뒤 구월령의 은신처를 알려줘 담평준의 칼에 구월령이 희생되도록 만들었다.
죽지 않고 천년악귀로 변한 구월령은 다시 나타났다. 윤서화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들 사이에 낳은 아들 최강치(이승기)를 처치하는 것은 물론 모든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다.
신수와 사람과의 결합으로 탄생된 혼혈아 최강치의 사랑도 아프다. 그는 갓난아이 시절 자신을 거둬준 박무솔(엄효섭)의 백년객관에서 스무해까지 살았다. 그는 박무솔의 자식인 박태서(유연석)와 박청조(이유비) 남매와 친형제처럼 자라는 과정에서 박청조와 어느덧 사랑하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박청조는 반가의 자식이고 최강치는 근본을 모르는 천한 신분이다. 두 사람은 이뤄질 수 없는 사이고 박청조는 고관대작집 며느리 자리로 혼사가 오간다.
그러던 어느날 천하의 악인 조관웅(이성재)이 윤서화 집안을 몰락시켰듯 박무솔에게 역모죄를 뒤집어씌워 그를 죽이고 백년객관을 빼앗는다. 그 과정에서 박청조의 어머니는 조관웅의 칼로 자결하고 박태서는 조관웅 부하의 암시에 의해 최강치를 원수로 착각하고 박청조는 춘화관에 관기로 끌려간다.
최강치는 조관웅과 초야를 치를 위기에 처한 박청조를 구해내지만, 뒤따라온 추격군들로부터 박청조를 지키기 위해 신수로 변한 최강치를 보고 박청조는 한순간에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춘화관에 제 발로 걸어와 기생이 된다. 그리고 그는 조관웅과 초야를 치른 뒤 예기가 되기 위해 춘화관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저잣거리에서 최강치는 박청조와 우연히 만난다. 그 얼마나 애틋한 순간인가? 최강치는 가슴이 떨리고 한켠이 아려오는 마음에 박청조에게 다가서지만 박청조는 싸늘하게 그를 외면하고 등을 돌린다. 이 사랑은 이제 끝났다. 최강치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만 남긴 채.
담여울(수지)은 소정법사(김희원)로부터 최강치와의 인연에 대한 암시를 받은 바 있다. 그와 인연을 맺을 경우 종국에는 둘 중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여울은 최강치에게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 아버지 담평준은 불운을 짐작하고 담여울을 제재하지만 담여울의 사랑은 제어가 안 된다.
사람들은 최강치의 정체를 알고 모두 그를 경계하지만 담여울만큼은 따뜻한 마음으로 그의 손을 잡아준다. 최강치는 소정법사가 준 구슬팔찌를 채워야만 신수의 야성을 잠재울 수 있는데 유일하게 담여울의 곁에 있을 때는 팔찌를 벗어도 신수의 야성을 드러내지 않는다. 담여울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그의 마음 한 가운데 자리한 악의 기운을 다스리는 것이다.
최강치는 담여울이 여자인 줄 모르고 막역한 친구처럼 대했다. 그저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뜻이 잘 맞는 또래의 청년으로만 보고 진한 우정을 나눴다. 그런데 그녀가 여자였다. 여장을 한 그녀를 담여울인 줄 몰라볼 만큼 그녀는 아름다웠다. 그 시기는 박청조가 최강치에게서 완전하게 마음을 돌리고 기생 생활에 착실하게 적응해 나가는 때였다. 이제 최강치도 담여울을 여자로 보기 시작했고 그녀의 사랑을 눈치 채고는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담평준이 운영하는 무형도관에는 사부인 담평준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형도관의 중요한 일을 결정짓고 그 뒤를 후원하는 매란국죽 네 명의 주요 지배자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 매 역할이 바로 담여울의 호위무사이자 담평준의 오른팔인 곤(성준)이다. 원래 노예였지만 실력과 심성을 높이 사 담평준이 그의 노예신분을 지워주고 키우는 가운데 담여울의 호위무사로 붙였다.
곤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키지만 담여울을 향한 사랑의 감정 만큼은 어쩌지 못한다. 그는 그 애정을 가슴 속에 갈무리한 채 뒤에서 묵묵히 담여울을 지켜준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최강치가 나타나고 담여울이 그에게 친절하고 희생적일수록 최강치가 밉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에게 담평준이 청천벽력같은 발표를 한다. 암시에서 풀려나 제 정신을 찾은 박태서가 아직 자신의 상태를 모르는 조관웅에게 가서 정보를 캐내는 작전을 수행하기로 결정하고, 그 임무를 무사히 끝마치고 돌아오면 담여울과 혼사를 치르게 한다는 것이다.
박태서는 담여울에 대해 이성의 감정을 품어볼 시간이 없었다. 그는 백년객관의 후계자로서 부모가 그렇게 비명횡사하고 집안이 풍비박산나 동생은 관기로 전락하고 백년객관은 원수 조관웅의 손에 넘어간 현실 속에서 복수도 해야 하고 백년객관도 찾아와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그런 그가 사사로운 연정에 이끌려 대의명분이 흔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욱 슬픈 사람은 담여울이다. 최강치를 사랑하는 것은 맞는데 아직 최강치는 박청조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뒤로 하더라도 최강치와 박청조의 사랑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동안 박청조를 구해주려는 최강치를 묵묵히 도와줬고 그녀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최강치를 내면의 감정과는 별개로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도와줬다.
그것은 언젠가는 최강치가 자신에게 올 것이란 운명을 믿기 때문이다. 그녀의 숙제는 현재의 최강치의 어긋난 감정이 아니라 소정법사가 예언한 최강치와 자신의 불행한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꾸는 것 뿐이다.
그런데 복병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박태서와의 혼사라니!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어이 없지만 담평준은 지금까지 담여울이 자신을 계속 실망시켜 왔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내린 것이고 이것은 박무솔 생전에 맺어놓은 약조이기 때문에 깰 수 없다고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버린다.
답답하고 실망스럽고 미래가 걱정돼 눈물 짓는 담여울 앞에 곤이 나타난다. 담여울은 매몰차게 혼자 있고 싶다고 곤을 내쫓지만 곤은 담여울을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방문을 두드린 게 아니다. 남몰래 담여울에 대한 연정을 키워온, 신분차이 때문에 그 사랑을 표현할 수도, 그 사랑이 완성된다고 믿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사랑의 감정 만큼은 굳이 갈무리하지 않으려 들었던 한 순수한 남자의 자기방어였다.
그는 이렇게라도 담여울과 눈을 맞춰며 자신의 속내를 밝히고 싶었을 것이다. 담여울의 눈물 만큼 자신의 눈물도 쏟아내며 가슴 속에 맺힌 이루지 못할 사랑을 키워가야 했던 한을 쏟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마저도 허락받지 못한다.
최강치는 이제 막 담여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의 싹을 틔우던 차였다. 그게 사랑인지 우정인지 헷갈리는 가운데 앞서 박청조에 대한 감정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우선이라 담여울에 대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이 알지 못할 감정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과정에서 박청조를 잊어야 했다. 이런 정리과정의 초입에 선 그에게 담평준의 담여울에 대한 혼인발표는 청천벽력이었다. 뒤통수에 철퇴를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인 그가 더욱 불쌍한 것은 그는 아직 인격형성이 완성되지 않은 반인반수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야수의 본능이 인간의 이성을 앞서 한치 앞을 못볼 사고를 칠지 모르는 그다.
게다가 그의 주변에서 아버지 구월령이 맴돌고 있다. 그의 목숨을 노리고서.
'구가의 서'의 배경은 조선시대지만 주인공들의 사랑은 시대적 차이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본디 사랑이란 게 그렇다.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감정이 딱딱 맞아떨어지고 주변환경까지 뒷받침돼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끼리 감정이 일치한다면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렇게 중요하게 자리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말보로 담배만 좋아하고 카푸치노만 마시며 청국장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뭉치는 기호의 일치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항상 제 자리에 있는 게 아니며 영속성이 보장되는 감정이 아니다 보니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은 다양하게 널려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다.
만약 최강치가 하루 아침에 박청조에 대한 감정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담여울과 사랑하며 딸에 대한 감정을 담평준이 존중해 그들의 사랑을 허락해 최강치와 담여울이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았더라 라는 스토리가 전개된다면 이 드라마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드라마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실제 사랑도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이혼률 1위고 미국에서는 결혼한지 3년 이내에 절반이 이혼한다.
이는 사랑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증거다. 사랑은 일시적이기 십상이고 수시로 변하며 영원하지 않다. 게다가 그 사랑은 한 곳에 고여있는 게 아니라 옆으로 흐른다. '구가의 서'의 사랑이 아픈 이유는 이렇게 복잡한 사랑일진대 시작도 하기 전에 맺어지기도 전에 타의에 의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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