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구’ 노경은, 책임감의 다른 이름
OSEN 박현철 기자
발행 2013.05.24 14: 01

제구력은 아쉬웠다. 삼진 9개를 잡았으나 사사구도 7개나 내줬고 위기도 수 차례 맞이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위기들을 스스로 넘어섰다. 데뷔 이래 가장 많은 한 경기 128구를 소화한 노경은(29, 두산 베어스)은 주축 선발의 몫을 제대로 해냈다.
노경은은 지난 23일 잠실 넥센전에 선발로 나서 6⅔이닝 동안 128개의 공을 던지며 3피안타(탈삼진 9개, 사사구 7개)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8회 넥센이 박동원의 동점타로 후속 투수 오현택을 공략하며 노경은의 선발승 요건은 사라졌으나 선발 투수로서 자기 몫을 해냈고 상대 에이스 브랜든 나이트에게 뒤지지 않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호투라고 칭찬하기는 아쉬움이 있다. 안타는 세 개 밖에 내주지 않았으나 사사구가 7개에 달했기 때문. 20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면서 128개의 많은 공을 던진 이유다. 노경은의 128구 중 스트라이크가 68개, 볼이 60개로 1-1에 가까울 정도로 제구는 아쉬웠다.

그러나 자신이 책임져야 할 때는 확실한 결정구로 타자를 사로잡았다. 이날 노경은이 주 패턴으로 삼은 공은 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투심은 47개를 던지며 최고 151km까지 나왔고 슬라이더 40개는 결정구로도 유인구로도 자주 사용하며 최고 143km까지 계측되었다. 스플리터를 남발하기보다 타자 몸쪽으로 슬라이더를 붙인 것이 결정타를 맞지 않은 이유였다.
사실 두산의 투수진 상황은 5월 들어 계속 안 좋았다.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4월 12일 이후 계속 재활 치료에 들어갔던 개릿 올슨의 공백기가 길어지며 계투 요원이 선발진 공백을 메우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고육책이 길어지면 결국 부하가 가게 마련. 한계 투구수를 확실히 끌어올리지 못한 선발 투수들의 난조, 계투 방화 현상이 연달아 일어나며 더스틴 니퍼트, 유희관, 오현택 정도 투수들이 독야청청했을 뿐이다.
노경은 본인도 투구 밸런스가 맞지 않은 데다 불운-슬럼프까지 겹치며 기대 이하의 실적을 올리던 중이었다. 17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첫 타자부터 스트라이크 낫아웃 출루로 내보낸 뒤 자기 릴리스포인트를 확실히 찾지 못하고 5실점 패배를 떠안았다. 주축 선발로서 평정심 유무를 시험받았던 경기였다.
23일 넥센전은 달랐다. 노경은은 생각대로 제구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실점하지 읺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고 가능한 한 이닝을 끌고 가기 위해 버텨냈다. 제구난 속 노경은의 6⅔이닝 무실점 128구 역투는 바로 그 의지를 경기력으로 보여준 것이다.
아직까지 노경은은 시즌 1승(3패)에 그치고 있다. 4월 2일 잠실 SK전 6이닝 2실점 승리 후 50일 넘게 승리 맛을 못 본 노경은이다. 그러나 선수 본인은 “선발로서 가능한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싶다”라며 팀 플레이어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과 함께 이닝을 마치고 들어오는 야수들을 기다렸다 하이파이브를 함께 한다. 128구 무실점투는 조기 강판으로 계투 요원들에게 큰 부담을 넘기지 않고자 했던 노경은의 집중력과 책임감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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