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클리닝타임] 박찬호의 과거, 류현진의 미래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5.26 06: 26

“팍(PARK)의 나라에서 왔네요?”
다저스타디움 미디어 출입구. 취재 ID를 받아야 하는 기자가 신분 확인용으로 여권을 내밀었다. 여권 앞면에 기재된 ‘REPUBLIC OF KOREA’라는 영어 표기를 봤던 것일까. 60대쯤 되어 보이는 한 관리자의 얼굴에 경계심이 사라진다. 그리고 미소를 띄우면서 대뜸 팍(PARK)을 이야기했다. 한국의 그 수많은 ‘PARK’ 중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자명했다. 바로 박찬호(40)였다.
그 관리자는 박찬호가 LA 다저스에 입단하기 훨씬 전부터 직원으로 일했다고 했다. 다저스에서 뛴 한국인 선수들에 대해서도 속속 알고 있었다. “덩치 큰 친구”(최희섭)를 말하며 웃었고 “잠깐 있었던 투수”(서재응)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그러나 역시 가장 많은 추억을 가진 선수는 박찬호였다. 그 관리자는 “다저스에서 더 오래 뛰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다저스에는 수많은 투수들이 거쳐 갔다. 좋은 투수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동양에서 온 한 투수를 기억한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박찬호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다저스에서 뛰며 총 80승을 거뒀다. 2000년에는 18승을 기록하며 다저스 팀 내 최다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케빈 브라운과 함께 다저스의 선발 로테이션을 이끌었다. 비록 1년에 불과했지만 재기를 꿈꾸던 그가 2008년 다시 찾은 곳도 다저스였다. 다저스에서 거둔 승수만 84승이다.
그 관리자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많은 팬들이 박찬호를 기억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했다. 다저스타디움 곳곳에도 박찬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다저스의 역사를 기록하는 장소에는 박찬호의 단독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라며 1994년 당시의 사진을 올려놨다. 다저스를 거쳐 간 스타들은 많지만 이처럼 단독 사진이 걸려 있는 선수들은 몇 없었다. 팀 역사를 기록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생각보다 거대한 박찬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LA 지역의 교민들도 박찬호가 뛰었던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 교민은 “박찬호가 한창 잘 할 때는 난리도 아니었다. 선발로 뛰는 날은 많은 교민들이 다저스타디움을 찾았다”고 떠올렸다. 성적이 좋았기에 더 신바람이 났고 자부심을 가졌다고도 덧붙였다. 이 교민은 “지역에서 그렇게 많은 한인들이 한곳에 모이는 일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 정도다”라고 귀띔했다. 당시 박찬호의 파급력을 잘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다.
다저스 담당 기자들 또한 박찬호가 지난해 은퇴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재는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을 갖고 물어보는 기자도 있었다. 그의 전성기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시간이 됐음에도 여전히 많은 관계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박찬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다저스의 ‘영웅’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는 분명 다저스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하나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권을 돌려준다. 여권을 받은 기자가 “이제는 류(RYU)의 나라이기도 하다”고 말하자 그 관계자는 “그렇게 됐다. 좋은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다저스 홍보팀 관계자도 “류현진이 신인왕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면서 박찬호의 사진 바로 위의 사진을 가리켰다. 그 사진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 연속 신인왕을 차지했던 이들(에릭 캐로스,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노모 히데오, 토드 홀랜스워스)의 단체 사진이었다. 박찬호가 다저스의 과거라면, 이제는 류현진이 다저스의 미래가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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