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평의 야구장 사람들] 권용관 야수선택은 홈스틸로 인정 됐으면
OSEN 천일평 기자
발행 2013.05.27 08: 00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7월 21일 인천구장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삼미 슈퍼스타즈의 대결 7회초 2사에 스코어는 4-4 동점. 3루에 해태의 1번타자 김일권이 나가 있었습니다.
삼미는 이때 선발 김동철을 내리고 팀이 에이스인 인호봉을 등판 시켰습니다. 3루주자 김일권은 인호봉이 마운드에 올라와 포수 최영환과 사인을 주고 받으며 숨을 고르고 천천히 던지는 사이 번개같이 홈에 뛰어 들어 한국 프로야구 첫 단독 홈스틸을 성공 시켰고 해태는 이 덕분에 5-4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크지 않은 체격으로 대표팀의 4번타자도 맡았던 김일권은 프로에서는 발군의 도루로 첫 해80경기 중 75경기에 출전하여 53개를 훔쳐 ‘대도’라는 별명을 듣고 전무후무한 5차례 도루왕에 오른 최고의 선수였습니다.

야구에서 도루(Stolen Basel)가 무엇입니까?
주자로 나간 선수가 다음 타자가 안타나 볼넷, 몸에 맞는 볼, 폭투, 패스트볼, 수비측의 에러가 없는 사이에 다음 베이스를 훔치는 행위입니다. 이때 주자는 상대 투수와 포수의 동작을 간파하는 스타트 센스, 빠른 발, 그리고 슬라이딩 기술을 이용합니다.
한마디로 투수와 포수의 틈을 노려 기민한 판단과 빠른 발을 이용해 다음 베이스에 주자가 재빨리 도달하는 기술입니다.
지난 주 LG의 베테랑 내야수 권용관(37)의 기습적인 홈 쇄도를 놓고 단독 홈스틸이냐, 야구선택이냐로 야구계 견해가 분분했습니다. 권용관은 지난 5월 23일 대구 삼성전 6회초 1-1 동점이던 2사 주자 1, 3루 상황에서 3루주자로, 삼성 투수 윤성환의 투구를 받은 포수 이지영이 투수에게 공을 돌려주는 사이 홈에 벼락같이 쇄도해 성공, 결승점을 올려 팀이 3-2, 한 점차로 이기는데 결정적인 공로를 세웠습니다.
당시 권용관은 윤성환이 타자 정성훈에게 볼카운트 2볼-1스트라이크에서 4구째 시속 139㎞짜리 직구를 던진 다음 뛰었습니다. 3루주자 권용관은 움직임이 없다가 포수 이지영이 고개를 끄덕인 뒤 앉은 채로 천천히 윤성환에게 공을 던지는 순간 홈으로 전력질주했고 윤성환은 황급히 홈으로 송구했지만 권용관의 발이 더 빨랐습니다. 2-1 역전.
지난해 말 SK에서 방출돼 친정팀 LG 유니폼을 입은 권용관은 전날 장외홈런으로 놀라게 하더니, 이날은 재치 만점의 주루플레이를 보여준 것입니다.
대부분 팬들이나 야구인들이 1년에 한 개 정도 나오는 홈스틸로 인정할 만한 순간이었습니다. LG 홍보팀은 처음에 ‘이번 홈스틸은 시즌 1호, 통산 35호’라고 홍보자료를 배포했다가 잠시 후 ‘홈스틸이 아닌 야수선택으로 공식 기록됐다’고 정정했습니다.
이날 대구 경기의 기록을 담당한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주헌 공식기록원은 “득점의 인과관계로 볼 때 투수가 던질 때 도루를 시도한 게 아니라, 포수가 투수에게 느슨하게 던지는 틈을 타 득점했기 때문에 단독 홈스틸을 줄 수 없다”며 “주자의 재치에 의한 득점인데, 내용적으로는 일종의 포수 본헤드 플레이에 의한 득점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공식기록지에는 ‘(2-1)’로 기록돼 ‘포수(2)가 투수(1)에게 공을 던지는 사이 득점했다’고 표시. 실책도 아니어서 투수 자책점으로 기록됐습니다.
KBO 윤병웅 기록위원장도 칼럼을 통해 ‘공을 천천히 던져준 포수 이지영의 태만한(?) 행위가 있었기에 3루주자 권용관의 득점이 가능할 수 있어 홈스틸이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하물며 투구에 앞서 뛴 것도 아닌, 투구를 받은 포수의 반환성 송구 이후에 뛴 것은 타이밍상 더더욱 투구에 앞서 뛴 것으로 보기 어렵다. 도루 관련 조항 여기저기에 기술되어 있는 ‘투구에 앞서 스타트’ 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하면, 일반 야수의 송구를 이용한 루 훔치기는 정식 도루기록으로 인정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야수선택이란 판정이 내리자 KSS TV는 ‘미국과 일본에선 이런 상황에서 홈스틸을 인정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KBS는 ‘한국 야구사에 남을 명장면이었지만, 야수 선택으로 기록돼 홈스틸로 인정받지 못했다’면서 야구팬 의 "정당한 홈스틸이다. 대기록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인터뷰를 곁들였습니다.
KBS 뉴스 한성윤 기자는 필라델피아의 제이슨 워스, 일본의 신조 츠요시가 권용관처럼 포수가 던지는 틈을 타, 절묘한 홈스틸을 성공해 홈스틸로 인정 받았다고 전하며 아쉬움을 표시했습니다..
야구경기의 꽃은 홈런입니다. 또 하나의 꽃은 홈스틸로 보는 사람들을 짜릿하게 만듭니다. 오랫동안 야구장을 드나든 필자가 보기에도 이번 기록판정은 단독 홈스틸로 발표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포수 이지영이 태만하게 천천히 송구하는 사이를 노려 홈플레이트를 훔쳐 투수가 투구 동작과 상관없이 이루어진 기습 행위라고해도 분명히 포수가 투수에게 송구해 투구 동작이 이어지기 직전에 이루어진 플레이이므로 투구 동작이 포함됐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2루도루나 3루도루도 투수와 포수의 느슨한 동작을 간파하고 기민하게, 재치있게 베이스를 훔치는 행위를 정식 도루로 기록하고 있어 이지영이 투수에게 태만하게(?) 투구를 위해 송구하는 사이에 기습적으로 홈플레이트를 훔쳤다면 도루로 인정해도 무방합니다.
기록위원회가 원칙대로 야수선택이라고 발표하더라도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알아본 다음 융통성을 가지고 처리했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OSEN 편집인 chunip@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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