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도환의 반전, 넥센에 던지는 메시지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5.27 10: 40

“매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독은 냉정해야 한다. 선수들에게도 자신이 백업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다”
지난 2월 오키나와 캠프에서 만난 염경엽 넥센 감독은 주전 선수들을 일찌감치 공언한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신의 결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말미에는 여지를 남겨뒀다. 염 감독은 “주전 선수들로 한 시즌을 모두 꾸려갈 수는 없다. 기회는 올 것이다. 그 기회를 잡느냐는 백업 선수들의 준비에 달렸다”고 했다.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실제 염 감독이 시즌 전 공언한 넥센의 주전 선수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순간에 바뀌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도 보인다. 묵묵히 기회를 기다린 선수들이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가장 도드라지는 선수가 바로 포수 허도환(29)이다.

허도환은 지난해 넥센의 주전 포수였다. 그러나 올해 염 감독은 박동원(23)을 주전 포수로 낙점했다. 허도환은 백업 신세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31경기에 나가긴 했지만 경기 후반에 나서거나 박동원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선발로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31경기에서 타석은 74번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역전됐다. 허도환이 주전 마스크를 쓰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시나브로 주전과 백업이 뒤바뀌었다.
염 감독은 25일 목동 롯데전을 앞두고 “투수들이 직접적으로 포수를 지목하는 경우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일부 투수들이 (허)도환이를 편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으로서는 어느 정도 감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염 감독은 “그것도 능력이다”라고 했다. 박동원이 허도환보다 더 나은 부분이 있는 만큼, 허도환이 박동원보다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염 감독은 “박동원은 내년과 내후년을 보고 간다. 김동수 코치가 많이 가르치고 있다”면서 허도환에 대해서는 “지난해에 비해 많이 좋아지고 또 진지해졌다”고 평가했다. 경쟁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 중 하나다. 주전 포수 마스크를 내주면서 스스로가 품었을 각오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이 그라운드에서의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염 감독이 바라는 그림이다.
박동원의 반격이 예고된 가운데 허도환이 넥센 선수단에 주는 메시지는 명백하다.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비록 출발은 백업에서 시작했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주전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서 그럴까. 넥센은 26일 목동 롯데전에서 김민우 오윤이라는 백업 멤버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롯데에 7-1로 이겼다.
경기 후 염 감독의 칭찬도 예사롭지 않다. 염 감독은 경기 후 평가의 대부분을 주전 선수들이 아닌 백업 선수들의 칭찬으로 채워 넣었다. 염 감독은 “컨디션 조절을 비롯해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준비하고 좋은 활약을 해줬다”며 백업 선수들의 맹활약을 높게 평가했다. 염 감독의 시즌 전 구상도 그렇게 맞아 떨어지고 있다. “백업 선수들의 활약으로 이겨서 더 기분이 좋다”라고 한 염 감독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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