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모전여전’ 신재영, “엄마 3점슛 따라가려면 멀었죠!”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3.05.28 07: 08

“김화순 딸보다 신재영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한국여자선수 최초로 미국대학농구(NCAA) 무대에 진출한 신재영(21)이 오랜만에 모국으로 돌아왔다. 올해 루이지애나 먼로대학에서 2학년을 마친 그녀는 지난 9일 6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외로운 타지생활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21살의 숙녀로 돌아간 신재영을 27일 OSEN이 만났다.
2학년을 마친 신재영은 팀의 핵심식스맨으로 슈터역할을 충실히 소화했다. 특히 장기인 3점슛은 40.8%의 성공률을 기록하며 11개 학교가 모인 선벨트 컨퍼런스 전체 1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사실 만족할 수 없는 시즌이었어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 남아요”라고 시즌을 되돌아봤다.

신재영의 앞에는 늘 ‘김화순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김화순(51)은 80년대 여자농구 최고의 슈터였다.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그녀는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김화순은 1984년 한국여자농구가 LA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스타플레이어. 최근 김화순은 모교 동주여고의 코치로 부임했다. 
“항상 엄마만큼만 하라는 말을 들어요. 엄마만큼 키도 크지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데 부담스럽죠. 그래도 피는 못 속이는 것 같아요. 우리 언니도 잠시 농구를 했는데 한 경기에 3점슛을 5개나 넣더라고요” 신재영과 김화순 코치는 친구이자 사제지간이다. 신재영은 매년 어머니의 개인지도로 구슬땀을 흘렸다. 올해도 모녀는 6월부터 함께 땀을 흘릴 예정이다.
최근 신재영은 큰 결심을 내렸다. 자신이 주역으로 뛸 수 있는 대학으로 전학을 가기로 한 것. 다음 시즌부터 신재영은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험볼트주립대에서 뛰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애틀과는 거리가 멀지 않아 적응도 어렵지 않을 전망.
신재영은 “사실 지금 있는 학교의 감독님이 슈터를 살리는 전술을 쓰지 않으셨어요. 출장시간이 적다보니 제 농구를 보여주기 어려웠죠. 제가 중심이 되어 많이 뛸 수 있는 학교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대답했다.
농구공을 잡고 있는 한 신재영은 어머니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숨기려 해도 자꾸만 돋보이는 재능과 실력은 어쩔 수가 없다. 신재영은 “김화순 딸보다 신재영으로 기억되고 싶어요”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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