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에 대한 맹신은 분명 삼가야 한다.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기록이 계속 이어진다면 선수들에게도 커다란 이미지를 남기게 된다. 대결 전부터 한 쪽으로 기울어진 것이 있다면 상호 간의 기싸움 구도가 팽팽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 자이언츠 좌완 이명우(31)와 두산 베어스 좌타자 정수빈(23)의 맞대결은 또다시 이명우의 10타수 무안타 승리로 끝났다.
장면은 28일 사직 롯데-두산전 3-3 6회초 2사 1,3루. 타석에는 선발 라인업 그대로 정수빈이 들어섰고 롯데는 우완 김승회를 내리고 좌완 이명우를 투입했다. 김시진 롯데 감독은 이를 승부처로 생각해 정수빈의 천적 이명우를 그대로 마운드에 올렸다.
정수빈과 이명우의 전날(27일)까지 통산 맞대결 성적은 10타석 9타수 무안타 1볼넷으로 이명우의 절대적 우위. 지난 4월 14일 잠실 경기서도 정수빈은 9회말 이명우에게 땅볼로 일축당한 바 있다. 데이터가 100%를 제공해주지는 못하지만 충분히 참고할 만한 부분이다.

대체 요원은 분명 있었다. 정수빈이 아니더라도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우타자 민병헌은 35경기 3할2푼 3홈런 14타점 9도루로 데뷔 이래 가장 좋은 타격 페이스를 자랑하고 있다. 민병헌은 비록 이명우와 대결한 표본이 없으나 1군 무대 첫 대결이라는 점은 오히려 이명우에게 부담을 안겨줄 수도 있었다. 단순한 좌우 놀이가 아니라도 말이다.
더욱이 민병헌은 올 시즌 좌투수를 상대로 5할1푼5리(33타수 17안타)로 강점을 비추고 있다. 팽팽했던 경기 중반인 만큼 상대의 투수 교체 카드에 맞서 대타 카드를 내세울 수 있었으나 두산은 그대로 정수빈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안 좋았다. 딜레이드 스틸 시도를 통해 양의지가 2루를 밟으며 2사 2,3루로 이명우를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을 제공했으나 정작 정수빈은 헛스윙으로 삼진을 당했으니. 그 결과 정수빈은 이명우 상대 통산 10타수 무안타로 천적 관계를 이어갔다.
경기 후 이명우는 정수빈 상대 10타수 무안타 강점인 데 대해 "그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다"라면서도 "정수빈은 장타보다 단타 위주의 타격을 하는 선수다. 그래서 범타를 유도해 아웃을 이끌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삼진으로 일축했으나 이전 9번의 범퇴는 모두 땅볼로 인한 아웃. 수치적으로 정리는 되지 않았어도 몸과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정수빈에 대한 이명우의 대처법이었다.
이 승부처를 살리지 못한 두산은 6회말 대거 3점을 내주는 등 급격히 무너지며 3-8로 완패했다. 이명우도 어렵지 않게 시즌 2승 째를 따냈다. 데이터는 참고 사항일 뿐이다. 그러나 선수를 쓰는 데 있어 충분히 고려해야 할 수단임은 주목해 볼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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