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아픈 마음, 기억처럼 남아 있어요”[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3.05.29 14: 40

배우 김상경은 “‘몽타주’가 엄정화의 대표작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속 엄정화가 보여주는 모성 연기는 아이를 갖지 않은 미혼자들의 눈시울도 적실 만큼 최루성이 강하다. 딸 서진이를 잃고 15년 간 아이를 찾기 위해 추적에 추적을 거듭해 온 집념의 엄마 하경에 100% 몰입한 엄정화. 혹자는 결혼도 하지 않은 미혼의 배우가 어떻게 이런 절절한 모정 연기를 할 수 있느냐, 감탄하기도 한다. 쏟아지는 언론과 관객들의 칭찬을 언급하자 엄정화는 “되게 희한하다”라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되게 희한해요. 매번 좋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거든요. ‘베스트셀러’ 때도 좋다고 이야기 들었는데 그 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에요. (칭찬의) 무게가 다른 느낌이랄까요? 기분이 이상해요. ‘너무 장면이 좋다, 연기가 너무 좋았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다른 작품들도 열심히 했거든요? (웃음) 사실 처음에는 제가 많이 나오는 영화도 아닌데 좋다고 해주시니까 의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야 조금씩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아, 내가 좋은 영화를 찍었구나”
엄정화 스스로는 자신의 비중이 크지 않은 영화라 말하지만, 영화 속에서 엄정화의 존재감은 뛰어났다. 김상경이 영화의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역할이라면 엄정화는 긴장감과 분노, 슬픔까지 영화 전반에 흐르는 감정을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통제한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힘들었어요. 김상경 씨와 대사를 주고 받는 신은 주로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신들이라 감정이 극에 달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고요. 그런 면에서 쉬운 장면은 하나도 없었어요. 아 있었다! 범인을 찾아 헤매는 장면은 쉬웠네요. (웃음)”
엄정화는 과거에도 많은 작품들에서 엄마 역을 맡았다. 특히 영화 ‘오로라공주’의 정순정 역은 이번 영화에서 맡은 하경 역과 어떤 부분 겹치는 느낌이 있다. 지난 영화의 경험이 이번 영화의 연기에도 도움을 준 게 있는지 물었다.
“도움이 됐다기 보다, 살면서 그런 연기를 하며 아파했던 경험들이 진짜 제 인생에서 겪은 일, 기억처럼 남아있는 것 같아요. 상처나 아쉬움? 트라 우마처럼 남아 있었나 봐요. 그래서 이번에 영화를 찍으면서도 좀 그 때 생각이 많이 들었었어요.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세월이 많이 지나도 완전히 잊혀지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영화의 내용 자체는 어두웠지만, 촬영장의 분위기는 정 반대였다. 너무나 화기애애했다고. 엄정화는 “늘 분위기야 좋았지만 이번에는 이상하다”고 말했다.
“저 너무 좋았어요. 그거 하난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이번 찰영장은 외롭지 않았어요. 가끔 외로울 때도 있어요. 서로 배려하지 않아서나 그런 건 아닌데 즐거운 영화를 찍을 때에도 그냥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이번 영화에서 완전히 내가 이 팀이구나, 여기 들어왔구나, 슬픈 감정도 이렇게 공유를 하는구나. 그런 걸 많이 느껴서 즐거웠어요. 감독님도 너무 좋고, 대표님이나, 촬영감독님, 조명감독님, 김상경씨까지 모두가 진심으로 날 좋아하는구나 느껴졌어요”
장편 영화로는 ‘몽타주’로 처음 데뷔한 정근섭 감독과의 작업도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신인 감독임에도 헷갈리는 것 없이 모든 일을 민첩하게 진행해 이미 여러 편을 만들어 본 솜씨 같았다고.
“그러고 보면 제가 했던 작품들은 거의가 데뷔작 감독님의 것이 많네요. 거의 대부분이 입봉 감독님이나 오랫동안 작품을 안 하시다 하시는 감독님들의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오로라 공주’의 방은진 감독님, ‘홍반장’의 강석범 감독님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유하 감독님 역시 두 번째 작품이셨고, ‘싱글즈’ 권칠인 감독님도 그렇고요”
현재 ‘몽타주’는 개봉 이래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랭크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공세 속에서도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조용한 저력을 보여줬다. 결과적으로는 엄정화를 위한 영화가 됐지만, 사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어서” 감독의 제의도 여러 번 거절했다. 여러 번의 거절에도 결국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시나리오가 재미있었어요. 마지막에 갖고 있는 느낌이 좋았다고 할까요. 배우로서 감정을 발산하는 장면이 어떤 부분은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또 경험하고 싶은 것이기도 해요. 두려운 마음도 있지만, 그 자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된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읽고 후반부로 갈수록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차기작은 영화로 거의 결정났고, 음반도 계획에는 없지만 할 수 있다면 내년쯤 좋은 노래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하고 싶다고 했다. 결혼 질문에 대해서는 “물어봐도 되는지” 물었더니 “물어보지 말아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진짜 답이 없단다. 그는 대신 요즘의 일상에 대해 설명했다. 오래된 친구도 이제는 친구같은 형제들이 있어 너무 좋다고.
“친구도 만나고, 여행도 가고, 운동도 하고, 관리도 하고, 그렇게 놀아요. 그냥 하루 종일 집에 있기도 하고요. 그렇게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날씨 좋으면 친구들을 모아서 커피 같은 것도 마시고, 요즘엔 그런 일상이 너무 좋네요. (엄태웅과는) 저희 이제 약간 친구 같아요. 어느 시간이 지나고 나니, 누나고 동생인데, 나누는 대화들이 서로 너무 공감되고요. 여동생들도 영화를 보면 '언니 그렇게 잘 하진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해요. 이제는 다들 친구가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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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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