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수현은 아직 풋내기에 가깝다. 지난 2007년 시트콤으로 데뷔한 후 대한민국이 모두 아는 대세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드라마 '자이언트',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서 아역을 맡은 데 이어 2011년 '드림하이'와 2012년 '해를 품은 달'로 꽤 '빨리' 떴다. 20대 최고 대세 배우로 인정받고 있지만 아직 작품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산전수전 공중전 겪은 중견 배우들의 내공을 따라잡기는 더더욱 어려울 터. 하지만 나이와 경험을 뛰어넘는 '똑똑한' 행보를 보이며 5년 뒤의, 10년 뒤의 모습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그다.
김수현이 생애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감독 장철수)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도둑들'(감독 최동훈)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루긴 했지만 이번 영화야 말로 배우 김수현이 메인 주연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6월 5일 개봉을 앞두고 언론 및 배급 시사회를 통해 먼저 공개된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단순한 작품의 완성도나 흥행성을 떠나 배우 김수현이 가지는 가치의 바로미터로 다가온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영화화한다는 점에서 일단 충분히 상업성을 갖췄고 김수현의 바보 연기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인 만큼 흥미 포인트를 두루 갖춘 게 사실.


하지만 캐스팅 당시 청춘 로맨스나 액션 느와르 등 젊은 남자 배우들이 선호하기 마련인 안정된 장르를 미뤄두고 바보 간첩 캐릭터를 선택한 건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해를 품은 달'과 '도둑들'로 연타석 홈런을 날린 이 피 끓는 청춘은 숱한 드라마와 영화의 섭외 1순위였다. 차기작을 고르던 당시, 온갖 다양한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들이 그의 손 안에 들어갔고 개중에는 얼핏 바보 간첩보다 훨씬 섹시하고 매력적일 것 같은 캐릭터들도 많았다. 하지만 김수현은 과감하게 바보 캐릭터를 골라들었다. 물론 이는 연기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자신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선택이다.
베일을 벗은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바보를 연기한 김수현이 사실은 얼마나 똑똑한 배우인지를 여실히 증명하는 작품이다. 물론 웹툰의 줄거리에 대단히 기대고 있는 까닭에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김수현의 캐릭터 '동구'는 실제 스크린에서 활어처럼 펄떡 펄떡 뛴다. 캐스팅 사실이 알려졌을 때 '김수현이 딱이다!'는 평가들이 압도적이었던 가운데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러운 연기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김수현은 영화를 절반으로 나누어 바보와 액션 꽃미남으로 반전의 활약을 한다. 코 흘리고 침 흘리고 아무데나 넘어지고 매를 맞던 동구는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블랙 슈트에 짧은 머리, 깊은 눈매와 날카로운 액션을 뽐내는 특수간첩 원류환으로 변화한다. 특히 후반부를 주도하는 맨손 액션, 눈물의 절규 연기는 또래들 중 단연 독보적인 김수현의 존재감을 또 다시 각인한다.
결국 우스꽝스러운 동네 바보부터 나라와 동료를 사랑하는 히어로로 변모하는 다채로운 캐릭터, 이를 통해 김수현은 내재된 가능성과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다양한 감정과 에너지를 분출한다. 영화를 보고나면 입을 반쯤 벌리고 싱겁게 웃는 바보의 얼굴과 냉혹한 현실 앞에 몸부림치는 처절한 절규의 표정이 엇갈려 머릿 속을 떠돈다. 김수현은 그렇게 멋지고 섹시한 꽃미남을 거부하고 카멜레온 같은 변신의 귀재로 다가왔다. 고작 20대 중반의 아직 경험 적은 이 배우가 무서운 건 바로 이 같은 안목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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