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벤자민 주키치는 2012시즌 전반기 최정상급 외국인투수였다. 당시 주키치는 19번 마운드에 올라 9승 4패 평균자책점 2.75로 리그를 지배했다. 117⅔이닝을 소화했고 퀄리티스타트 15회, 이중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는 8회로 2011시즌 최다 이닝을 기록했던 모습을 그대로 이어갔다. 2011시즌 옥에 티였던 좌타자 피안타율 3할2리도 2할2푼으로 대폭 낮췄다.
하지만 이후 주키치는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2012시즌 후반기 11번의 선발 등판서 2승 4패 평균자책점 4.83으로 급격히 추락했다. 일찍이 마운드를 내려가기가 부지기수로 59⅔이닝 밖에 못 던졌다. 하락세는 올 시즌까지 이어졌다. 주키치는 지난 23일 전까지 8경기에 선발 등판해 43이닝을 던지며 1승 3패 평균자책점 5.02으로 무너졌다. 부진의 결정적 원인은 제구력. 22개의 삼진을 기록하는 동안 볼넷 18개를 범하며 삼진과 볼넷 비율이 1:1에 가까웠다. 2011시즌 삼진 150개 불넷 53개, 2012시즌 삼진 96개 볼넷 54개와 비교해 현저히 떨어졌다.
결국 주키치는 지난 13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2군에서 몇 가지 수정에 들어갔다. 투구판 밟는 방향을 3루쪽에서 1루쪽으로 바꿨고 투구폼에도 변화를 줬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1군 복귀 경기였던 23일 대구 삼성전에서 5⅓이닝 6탈삼진 2실점으로 41일 만에 선발승을 올렸다. 무엇보다 무사사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다음 등판인 29일 잠실 한화전도 5⅓이이 1실점으로 2연승에 성공했고 사사구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는 못했지만 탈삼진 9개 1볼넷을 기록, 사사구가 확연히 줄어들어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기에 충분한 투구 내용이었다.

특유의 우타자 몸쪽을 날카롭게 파고 들어가는 컷 패스트볼이 살아났고 커브와 체인지업의 움직임도 의도한 대로 이뤄졌다. 쓸데없이 높게 형성되며 볼카운트 싸움을 불리하게 만들었던 직구는 줄어들고 있다. 주키치는 2군에서 무엇을 했는지 묻는 질문에 “2군에 내려가면서 나 자신을 다시 돌아봤다. 예전에는 어떻게 던졌었는지 살펴보고 지금 안 되는 부분을 체크했다. 투구판 밟는 위치도 2군에서 바꿨다. 투구판 어느 쪽을 밟고 던지느냐에 따라 굉장히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릴리스포인트부터 공의 궤적까지 모든 게 다 바뀐다”며 “투구판 뿐이 아닌 투구폼도 수정했다. 시즌 중 이렇게 변화를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당시의 절박함을 이야기했다.
LG 차명석 투수코치는 주키치의 최근 선전을 두고 투구판 밟는 위치보다는 투구폼을 수정한 게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차 코치는 “왼발 회전력에 변화를 줬다. 축발이 늦게 떨어지곤 했고 몸이 제대로 회전하지 않아 공이 무디고 공을 놓는 각도가 안 좋았다. 그러면서 위로 날리는 공이 많이 나왔었다”며 “주키치에게 직접 사진을 보여줬고 최근에는 왼발이 빨리 떨어지고 몸이 잘 넘어온다. 투구판 위치를 바꾼 것보다는 왼발의 이용을 크게 한 게 공이 좋아지고 있는 주요 원인이다”고 말했다.
최근 주키치 스스로도 변화를 통해 자신감을 찾은 모습이다. 주키치는 29일 경기서 포수 최경철의 사인을 곧바로 받아들이며 투구 템포를 빠르게 가져갔다. 한창 부진했을 때는 포수와 사인을 교환하는 시간이 길었던 반면, 이날은 포수가 주문하는 코스와 구종을 곧바로 받아들이고 투수 자세를 잡았다. 2연승에 성공한 후 주키치는 “투구판 밟는 위치를 예전처럼 바꾸고 나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컨디션도 좋아지고 있어서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더 긴 이닝을 소화하고 싶다”고 변화에 대한 만족감과 앞으로의 과제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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