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는 연기력 논하지만 아이돌은 진화한다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3.05.30 13: 26

[유진모의 테마토크] KBS2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의 제왕' 코너는 아이돌에 대한 다수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드라마 제작사 박대표(박성광)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지루한 내용을 자극적으로 바꾼다. 출생의 비밀 코드를 넣고 가족간의 갈등을 삽입시키는 파격으로 시청률을 올리다가 다시 지루해질만 하면 히든카드로 아이돌 출신 배우를 투입한다. 아이돌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화제를 낳아 일시적인 시청률 상승 효과를 보지만 이내 시청률 지수 그래프는 뚝 떨어진다. 아이돌의 두 눈 뜨고 못 봐줄 발연기 때문이다.
아이돌이 드라마에 나왔다 하면 발연기 논란에서 피해가기 어렵다.10~20대 팬들은 매주 드라마를 통해 자신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를 1시간 동안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즐거울 일이지만 드라마 자체에 몰두하는 30대 이상의 '어른'들은 한참 드라마의 스토리에 빠질 만하면 등장해 기성배우와 톤이 다른 연기를 펼치는 아이돌의 어설픈 발연기에 몰입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툴툴댄다.
언제부턴가 우리 연예계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데뷔한 뒤 어느 정도 명성을 쌓으면 각자 배우로 활동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들이 창궐하는 시대로 변했다. 그 특징은 연령층이 낮아졌고 외모가 출중해졌으며 가수에서 배우로 자연스럽게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게 공식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돌 출신 배우는 전문 배우에 비해 연기력이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왜냐면 전문 배우는 나이와 경력을 떠나 원래부터 배우를 준비해왔지만 아이돌 출신 배우는 연기 보다 노래와 춤에 전력투구해왔고 아무래도 무게중심이 배우 보다는 가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에 아이돌 배우가 나오면 환호하는 어린 팬만큼이나 눈살을 찌푸리는 '어른' 시청자들도 많다. 과연 아이돌은 드라마의 해악이고 독일까?
이제 드라마에 어떤 아이돌이 출연한다는 지적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아이돌의 드라마 출연은 필수다. 오히려 KBS2 새 월화드라마 '상어'에 아이돌이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하게 비칠 정도다.
MBC '구가의 서'에는 아이돌 여가수의 대세 수지를 비롯해 소년 가수 출신의 이승기가 주인공을 맡고 있으며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는 카라의 한승연이 투입됐고 케이블TV tvn '연예조작단; 시라노'에는 소녀시대의 수영이 주연으로 출연중이다. SBS 주말특별기획 '출생의 비밀'에는 아예 원조 걸그룹 핑클 출신 성유리와 이진 두 명이 한꺼번에 맹활약 중이다.
아이돌의 연기력이 유독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그들이 드라마 속에서는 신인배우이지만 그 자체만 놓고 볼 때는 이미 대스타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만 뗀 채 순수한 신인연기자로서만 비춰진다면 그토록 시청자의 분노를 야기하거나 연기력 논란으로 뭇매를 맞지는 않을 것이다.
홍콩은 오래 전부터 청춘스타의 노래와 연기 활동 병행이 정석처럼 진행돼 왔다. 홍콩 누아르의 전성기를 활짝 연 저우룬파(주윤발) 장궈룽(장국영) 류더화(유덕화) 등은 당연한 듯 영화활동과 더불어 음반취입 활동을 병행하며 배우와 가수로 동시에 활동해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배우의 가수활동이나 가수의 배우활동은 한때의 반짝 인기에 편승한 일시적 외도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 아이돌의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지금처럼 아이돌로 성공해 배우로 보폭을 넓히는 게 자연스런 공식이 된 것.
아이돌의 발연기 논란의 근거는 편견에 있다.
제작진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기준은 작가가 만들어 놓은 극중 인물과 실제 배우의 싱크로율과 소화력이다. 물론 여기에는 흥행력이 필수다. 하지만 아이돌을 캐스팅하는 근거에는 싱크로율과 소화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화제를 불러일으킴으로서 작품의 지명도와 친근감을 높일 것인가에 더 무게중심이 실린다. '시청률의 제왕'의 박대표도 그렇고 올초 종영된 SBS '드라마의 제왕'의 앤서니김도 그렇고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시청률이고 그 다음은 PPL이다.
이것은 비단 '개그콘서트'나 드라마 속의 얘기가 아니고 현실이다. 애시당초 제작진은 아이돌에게 연기력을 기대하고 캐스팅한 게 아니다. 뜻있는 시청자들의 연기력 지적은 애초부터 예고된 것이고 제작진이 그것을 예견 못 한 바도 아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감수하고서라도 시청률을 노려보겠다는 의중이다.
결국 연기력 논란에 대한 해답은 아이돌 자신이 쥐고 있다. 그들이 가수활동 만큼이나 배우 활동을 안정적으로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연기력을 쌓아 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실제 아이돌들은 하루 하루 진화하며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구가의 서'의 이승기고 그를 롤모델 삼아 차근차근 발전해나가는 인물이 수지다.
'드라마의 제왕'의 한류스타 강현민 역의 시원은 드라마 초기 발연기 논란에 시달리더니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을 완벽하게 맞추면서 훌륭하게 배역을 소화해냈다. 그리고 그는 그 연기력을 인정받아 강현민 캐릭터 그대로 현재 한 이동통신 CF에서 연기 중이다.
수지는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단숨에 국민첫사랑이란 애칭을 받았지만 '구가의 서' 초기에는 이승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연기력으로 뭇매를 맞았지만 회를 거듭해갈수록 점점 안정돼 가는 연기력으로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하게 내뿜고 있다.
이는 대중이 발연기 논란을 야기하며 집단구타를 할수록 아이돌의 내성은 강해지고 그 강인함을 배워갈수록 연기력이 일취월장한다는 증거다.
현재 '출생의 비밀'의 이진과 성유리, 특히 성유리의 연기는 극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2002년 SBS 드라마 '나쁜 여자들'로 배우로서 데뷔했을 초기만 하더라도 그녀는 연기 못하는 인형같은 아이돌일 뿐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수 편의 작품을 통해 수 년간의 세월을 연기력으로 환원하는 가운데 그녀는 차근차근 성장한 것이지 핑클에서 하루 아침에 배우로 변신하자마자 연기자로서의 자질을 충분하게 갖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는 매를 맞으면 맞을수록 그 비난과 야단을 자양분 삼아 오히려 광합성을 함으로써 내실을 충분하게 다진다. 시청자가 비난하면 할수록 아이돌의 연기력은 진화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찬받는 최민식은 연극배우에서 처음으로 안방극장에 진출한 KBS2 '야망의 세월'의 꾸숑 역으로 당시 최고로 연기 못한다는 욕을 트럭으로 먹은 바 있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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