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LG 출신 신인왕이 탄생할 것인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했다. LG 내야수 문선재(23)가 2일 광주 KIA전의 주인공이 됐다. LG는 9회 4점차를 극복하며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고 10회 5-4 역전승에 성공, 5연승을 질주했다. 그리고 이날 역전 드라마의 중심에는 문선재가 있었다.
문선재는 7번 타자겸 1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7회초 중전안타를 날리며 시동을 건 문선재는 9회초 KIA 마무리투수 앤서니를 상대로 좌전안타를 기록, 무사 만루를 만들어 대역전의 발판을 놓았다. 이어 손주인의 좌중간 적시타로 LG는 4-4 동점을 만들고 9회말을 맞이했다.

기적처럼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선발 출장한 포수 윤요섭과 7회말 윤요섭을 대신해 포수 마스크를 쓴 최경철이 교체된 것이다. 동점 득점을 올린 대주자 또한 투수 임정우. 이미 LG는 야수진 카드를 다 써버린 상태였다. 그라운드에 오른 야수 중 그 누구도 프로 무대서 포수를 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야수진에서 막내급인 문선재가 포수마스크를 쓰고 홈 플레이트 뒤에 앉았다.
여기서부터 진짜 드라마가 시작됐다. 문선재는 9회말부터 마무리 투수 봉중근과 호흡을 맞췄다. 투수에게 사인을 내는 것도, 변화구를 잡는 것도 프로 데뷔 후 처음이었지만 실책은 없었다. 봉중근 역시 변화구 비율을 줄이고 전력으로 투구하지 않으며 문선재를 배려했다. 봉중근은 9회말을 삼자범퇴로 막았고 문선재는 10회초 타석에서 결승타를 때렸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10회말 마지막 고비가 찾아왔다. 첫 타자 김선빈이 내야안타로 출루했다. 발 빠른 김선빈이 도루라도 한다면, 곧바로 동점위기에 몰린다. 하지만 더 이상의 드라마는 없었다. 봉중근은 다음 타자 김주찬에게 2루 땅볼 병살타를 유도해 김선빈과 김주찬을 모두 잡았다. 나지완과 이범호에게 볼넷을 내줘 마지막 위기에 몰리자 문선재는 봉중근을 향해 전력투구를 요구했고 봉중근은 윤완주를 맞아 직구 구속을 140km대로 올렸다. 결국 봉중근의 체인지업이 윤완주의 배트를 지나 문선재의 미트로 들어가며 경기가 종료됐다. 경기 후 김기태 감독은 “선수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며 문선재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문선재는 포수 마스크를 쓴 상황을 돌아보며 “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시작하면서 경험상 포수를 한 이후 처음이다. 결승타보다 포수로 경기를 끝내는 삼진을 잡은 게 더욱 새로운 경험이었다. 오늘 정말 소중한 경험을 했다. 팀이 승리하는데 기여해서 기쁘다. 팀에서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포수로 나갈 용의가 있다”고 고비를 넘긴 것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사실 문선재의 다재다능함은 이전부터 돋보였다. 동성고 시절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던 문선재는 LG 입단 후 멀티 내야수로 성장 방향을 잡았다. LG 2군에서 1루를 제외한 내야 전포지션을 소화했고 2010년말 상무에 입단한 뒤로는 1루까지 맡았다. 정신없이 다양한 포지션에 나서면서도 2010시즌 퓨처스리그 사이클링히트를 달성했고 2011시즌에는 20-20까지 기록했다. 수비뿐이 아닌 공격과 주루 플레이 잠재력 또한 무궁무진했다.
상무서 군복무를 마친 문선재는 지난해 마무리캠프서 두각을 드러냈고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해외 전지훈련도 경험했다. 전지훈련 당시 문선재의 목표는 주전 2루수가 되는 것이었다. 문선재는 “서동욱 선배님이 지난 시즌 주전이었으니까 아무래도 모든 2루수의 경쟁상대시다. 주전 2루수를 차지하는 게 올 시즌 목표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곱상한 외모 안에는 1군 선수가 되기 위한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고 매일 야간 자율 훈련에 임하며 정신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문선재는 3월 30일 개막전에서 1루수 겸 7번 타자로 선발 출장, 목표를 향한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은 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타율 3할1푼5리 5도루 14타점 17득점으로 활약 중이다. 득점권 타율은 4할3푼8리에 이른다. 작년까지 1군 무대 경험이 7경기에 밖에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기록이다.
문선재의 롤 모델은 이병규(9번)다. 문선재는 “이병규 선배님이 존경스럽고 닮고 싶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이병규 선배님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자신의 목표점을 밝힌 바 있다. LG는 1997년 이병규 이후 신인왕 계보가 끊겼다. 문선재가 지금의 활약을 이어간다면, 16년 만에 LG 출신 신인왕이 될 수 있다. NC 이재학 나성범 이태양, SK 한동민, 두산 유희관 등 어느 해보다 신인왕 경쟁이 상황. 문선재 또한 포수마스크를 쓰면서 이들 못지않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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