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끊어질 것 같지 않던 한화 김태균의 연속경기 출루기록행진이 지난 5월 31일 NC와의 대전 홈경기에서 멈춰 섰다. 그것도 자신의 등 번호와 똑 같은 52경기에서. 2012년 9월 27일 문학 SK전에서 시작된 기록으로, 현재 한국프로야구의 연속경기출루 개인 최고기록은 펠릭스 호세(롯데)의 63경기이다.
기록이 중단된 후 김태균은 인터뷰에서 “연속경기 출루기록은 자신에게 전혀 의미가 없다”는 말로, 에둘러 개인보다는 어려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팀 성적을 먼저 걱정하고 나섰지만, 야구에서 출루기록은 결코 가벼이 여길 부분이 아니다.
지금은 은퇴한 양준혁이 자신이 쌓아 놓은 수많은 통산기록들 중 가장 아끼는 기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안타나 홈런이 아니라 1380개를 기록한 4사구(정확히는 볼넷을 의미)라고 누차 강조를 한 것도, 따지고 보면 타자로서의 출루는 공격의 기본이자 득점으로 가는 첫 걸음으로 그것이 팀플레이의 시작이라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출루율이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우수한 타자의 척도로 우리는 흔히 타율과 타점 그리고 홈런을 말한다. 야구장 전광판에도 이러한 기록들이 타자의 실력과 능력을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타자의 출루율은 일부러 검색해 찾아보지 않는 한, 정확한 수치를 알기 어렵다. 그만큼 각광받지 못하고 있는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타자가 안타로 나가거나 볼넷으로 나가거나 1루에 출루해 득점기회를 맞이하는 것은 안타가 장타가 아닌 이상, 전혀 다를 것이 없다. 단지 포장지의 무늬만 다를 뿐이다. 화려하거나 또는 덤덤하거나.
1970년대 들어 타율이나 타점, 홈런 등 공식기록이 보여주는 타자의 단면적인 얼굴에 만족하지 못해 이면에 숨겨진 기록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재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출발점이자 주안점은 출루율이었다. 최근 타자의 능력과 공헌도 평가에 있어 신빙성 높은 자료로 각광받고 있는 OPS(출루율+장타율) 역시 이에 착안한 기록이다.
2000년대 초반 이렇다 할 고액연봉의 스타 플레이어도 없이 만년 하위권에 머물던 팀을 무려 5차례나 포스트시즌에 올려 놓았던 MLB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이, 당시 부족한 전력을 이론을 통해 메우고 끌어올리기 위해 남들이 거들떠 보지 않았던 야구 기록통계와 머리씨름을 벌였다는 머니볼 얘기도 야구적으로 보면 결국은 출루의 극대화와 득점확률의 상승에 관한 고민이었다.
올 시즌 김태균은 열악한 팀 전력에도 당당히 출루율 1위(.472)에 올라있다. 김태균 외에 크게 경계해야 할 타자가 확연치 않은 관계로 홀로 상대로부터 경원 당하는 일이 많아짐으로써 얻어진 결과다. 위기다 싶으면 상대는 김태균에게 고의4구성 볼넷을 던진다. 5월 31일 기준으로 김태균이 얻어낸 4사구 수는 46개. 총 47개를 기록하고 있는 안타수 보다 불과 1개 적을 뿐이다.
기록에서 보듯 김태균은 제대로 방망이를 휘둘러볼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타격감 유지면에서도 유리할 것이 없지만, 툭하면 4구를 얻어 1루로 나가는 통에 그가 갖고 있는 그 이상의 힘과 결정력이 묻히는 일이 잦다. 5월 31일 김태균의 멘트는 기록중단 사실을 떠나 바로 이점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알다시피 출루율은 타자가 안타나 4사구로 1루에 살아나갔을 때 수치가 높아진다. 반면 상대 수비수의 실책으로 출루한 경우에는 출루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어 출루율이 낮아진다. 만일 김태균의 기록이 중단되던 날 마지막 타석에서 상대 야수의 실책으로 1루를 밟았다고 한다면, 연속경기 출루기록 행진은 중단된 것으로 판정된다.
그렇다면 실책에 의한 출루는 모두 출루율에 독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만약 타자가 포수의 타격방해로 1루에 나갔다면 이때는 4사구에 의한 출루와 같은 내용으로 간주된다. 포수의 타격방해는 기록상 포수실책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이는 타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정상적인 공격을 펼칠 기회를 빼앗긴 것이기 때문에 정상참작이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실책에 의한 출루로 기록되고 있는 또 하나의 기록인 주루방해에 의한 출루는 타구내용에 따라서 출루기록에 득이 될 수도 또는 해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인 땅볼타구를 치고 1루로 뛰어가다 투수나 1루수로부터 주루를 방해당했다면 이때는 출루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안타성 타구를 치고 1루로 뛰어가는 중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때는 주루방해가 있었어도 타자의 기록은 안타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이와 연관된 얘기 또 하나. 지난 5월 8일 문학구장 SK-두산전에서는 1회초 두산이 톱타자 민병헌부터 9번타자 손시헌까지 모든 타자가 연속으로 출루해 득점까지 성공하는 진기록이 만들어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비공식적 기록이긴 하지만 ‘1회 시작 한 이닝 선발타자 전원출루-전원득점’이라는 진기록이 인정되지 않은 이유는 9번 손시헌이 안타나 4사구가 아닌 상대실책(3루수)으로 출루한 것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경기는 SK가 1-11이라는 10점 차의 열세를 극복하고 13-12로 역전승, 프로야구 역대 최다 점수차 역전승 경기로 기록되었다)
한편 희생타와 엮인 출루기록 인정은 희생번트일 때와 희생플라이일 때의 적용이 각각 다르다. 희생번트는 자신을 희생해 타격기회를 스스로 반납한 것인 만큼 출루율 기록에서 마이너스 요인으로 계산하지 않는다. 즉 4사구와 같이 취급한다.
그렇지만 희생플라이는 경우가 다르다. 타율을 떨어뜨리는 요소로는 계산되지 않지만 출루율 계산에서는 1타수 무안타와 다름이 없다. 그저 플라이타구로 아웃된 것으로 간주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희생플라이는 자신의 정상적인 타격기회를 포기해서 나온 기록으로 여기지 않는다. 정상적인 타격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3루주자를 득점시킨 플라이타구가 나온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희생플라이는 출루율 계산공식에서 아래 분모 쪽에 1을 더하는 것으로 처리된다.
지금까지의 얘기를 종합하자면 타자의 출루율은 자신의 능력으로 당당히 1루에 출루하거나, 공정한 대결기회를 상대로부터 얻지 못해 타의에 의해 떠밀려 진루한 경우에는 손해를 입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 실수에 의한 억지 출루는 타자의 출루율을 깎아먹는 요소로 작용한다. 야구의 출루기록, 이 속에도 작은 정의가 들어있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