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26, LA 다저스)과 다르빗슈 유(27, 텍사스 레인저스)는 한·일 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들이다. 책임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런데 두 선수가 나란히 등판을 고사했다. 우리 정서에서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현지에서는 팀을 위한 결정으로 오히려 두둔하는 분위기다. 여기에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당초 3일(이하 한국시간) 콜로라도 로키스전 등판이 예정되어 있었던 류현진은 등판을 건너뛰었다. 발 상태가 완벽하지 않아서다. 류현진은 지난달 29일 LA 에인절스전에서 트럼보가 친 타구에 왼발을 맞았다. 끝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기념비적인 완봉 역투를 완성하기는 했지만 왼발에 탈이 났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디딤발이 되는 왼발에 힘을 완벽하게 싣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넘쳐나는 부상 선수들로 선발 로테이션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저스다.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은 류현진이 정상 로테이션을 소화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류현진은 “아직 완전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무리하고 싶지 않다. 괜히 던지다가 3~4회에 아프면 팀에 더 폐를 끼치게 된다”며 고사 의사를 밝혔다. 결국 팀도 이런 류현진의 의사를 수용했다.

류현진은 에이스 의식이 철두철미한 선수다. 수년간 소속팀 한화와 대표팀에서 ‘부름’에 성실히 임했다. 한 번 마운드에 서면 끝까지 지키려 애썼다. 그랬던 그가 좋지 않은 팀 사정에도 등판을 거르게 된 것이다. 사실 벤치의 지시에는 군말 없이 따르는 성향이 있는 국내 정서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는 다르다. 100%일 때 마운드에 오르고 싶다는 류현진의 의견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고 또 옳았다.
실제 부상을 숨기고 마운드에 올랐다 오히려 팀에 폐만 끼치는 경우도 많다. 류현진은 팀 동료 테드 릴리의 사례가 머릿속에 남아있었을 법하다. 릴리는 지난 4월 30일 허리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를 숨기고 등판했다. 그러나 경기 중 통증을 호소하며 마운드를 떠났다.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한 매팅리 감독의 경기 구상이 다 꼬였다. 경기 후 매팅리 감독이 화를 참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공교롭게도 다르빗슈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다르빗슈는 3일 캔자스시티와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99개의 공을 던지며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하지만 8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5일 휴식을 취한 까닭에 투구수에는 여유가 있어 의구심이 증폭됐다. 내막은 다르빗슈의 자진 강판 의사였다.

6회 이후부터 피로가 몰려옴을 느낀 다르빗슈는 7회 후 론 워싱턴 감독에게 “더 던질 수 있지만 불펜 투수가 올라가는 것이 팀을 위해 더 좋겠다”라고 요청했다. 사실 1-0의 살얼음판 리드 상황이라 좀 더 욕심을 부려볼 만 했다. 투지가 강한 다르빗슈에게 자진 강판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르빗슈는 자신이 던지는 것이 팀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류현진과 상황은 다르지만 맥락은 맞닿아있다. 두 선수 모두 자신의 몸은 물론 팀에 끼칠 악영향도 고려한 결정을 내렸다.
두 선수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국내 프로야구도 예전보다 체계적인 선수 관리 시스템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각 구단들이 부상 관리에 대한 절실함을 깨달으면서 이 문화는 정착 단계가 머지않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전히 선수들은 구단의 눈치를 본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오늘 경기에 나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문화는 아니다. 벤치에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입지가 확고하지 않은 선수들이라면 더 그렇다.
메이저리그와는 반대로 이런 투혼이 ‘팀을 위한 희생과 책임감’이라는 포장지로 쌓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무리한 출전이 부상을 키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궁극적으로 선수도, 구단도 손해다. 덕아웃 문화와 더불어 구단의 연봉 산정 시스템도 재고의 여지가 있다. 출전과 그에 따른 고과에는 철저하면서도 더 나은 활약을 위한 휴식에는 ‘부상’이라는 주홍글씨 아래 유난히 박한 것이 한국프로야구다.
이는 선수들이 무리하게 경기에 나설 수밖에 없는 하나의 배경이 된다. 류현진과 다르빗슈가 흔든 고개가 꽤 짙은 여운으로 남는 이유다. 메이저리그의 시스템을 국내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어느 쪽이 ‘Win-Win’을 쫓고 있는지는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찌됐건 그라운드의 주인공은 선수들이고 구단의 가장 큰 자산도 선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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