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현장에서는 '하나만 잘 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공을 맞히는 재주가 뛰어나면 대타로, 수비를 잘 하나면 대수비로, 그리고 발이 빠르면 대주자로 1군에서 활약을 펼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경기 막판 빠른 발과 주루능력으로 승부의 향방을 가르는 대주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최근 판세다. 대주자는 단순히 발만 빨라서는 안 된다. 롯데는 한국 100m 신기록 보유자였던 서말구씨를 대주자로 영입했지만 실제로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상대 수비수들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는 안목과 주루기술이 필수적이다.
이제까지 전문 대주자요원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주루능력 하나만 보고 기용하기에는 1군 엔트리가 아까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전문 대주자는 타석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경기 막판 대주자로만 나가는 선수를 말한다. 대신 많은 팀들은 전문 대주자 대신 발 빠른 선수를 경기 막판 대주자로 기용한다. 그래도 충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대주자로 삼성 강명구를 꼽는데 이견은 찾아보기 힘들다. 강명구는 프로 통산 9년 동안 통산 239타수만을 기록하고 있지만 득점은 129점이나 올리고 있다. 그리고 도루는 102개, 이 가운데 98개가 대주자로 기록한 도루다. 올해 강명구의 타격 성적은 4타수 1안타지만 경기 출전은 13번, 그리고 6득점 5도루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강명구의 뒤를 이어 넥센 유재신이 전문 대주자로 활약 중이다. 유재신의 올해 타격성적은 8타수 2안타, 하지만 경기 출전은 29번이고 9득점 3도루를 기록 중이다. 강명구와 마찬가지로 주로 대주자로만 기용되면서 자신이 왜 1군에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10타수 미만을 기록하면서 5득점 이상을 올린 선수는 강명구와 유재신 둘 뿐이다.
강명구와 유재신의 소속팀인 삼성과 넥센은 현재 공동선두를 달리고 있다. 전문 대주자가 있는 팀이 공동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이유를 넥센 염경엽 감독은 안정적인 전력을 꼽는다. 염 감독은 "강팀이 되기 위해서는 전력에 변수가 적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대주자 한 명이 1군에서 뛰려면 그만큼 다른 전력이 탄탄해야 한다"면서 "여기에 팀은 선수에게 무슨 역할을 기대하는지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고 말한다.
삼성과 넥센의 공통점은 선수단 내에서 선수들의 역할이 명확하게 구분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감독의 결단력과 리더십이 필수다. 경기 막판까지 대타나 대수비, 대주자를 모두 준비하는 선수와 대주자만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선수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
대주자만 생각하고 준비할 수 있는 팀에서 뛰는 건 강명구와 유재신에게도 행운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팀 전력이 받쳐줘야 가능하고 1군 엔트리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코칭스태프의 지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명구와 유재신이 1군에서 두 발로만 활약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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