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가 축구경기장을 폭격한다? 실제로 있었던 비극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5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베이루트 카밀 샤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레바논을 맞아 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른다. 한국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중요한 경기다. 레바논의 긴박한 정세와 맞물려 베이루트는 폭풍전야에 휩싸여 있다.
카밀 샤문 스타디움은 5만 여명을 수용하는 레바논 최대의 경기장이다. 1957년 레바논의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완공됐다.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서 최고를 자랑하던 구장이었다. '콜로세움'을 연상시키는 아치기둥과 원형스타일이 웅장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전쟁과 함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은 전투기를 동원해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 스타디움 주변은 전형적인 주택밀집지역이지만 개의치 않고 폭탄을 투하했다. 경기장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됐다. 폭격으로 집을 잃은 난민들은 운동장에 천막을 지었다. 경기장은 난민촌으로 변했다. 레바논 시민들은 모든 희망을 잃었다.
1992년 임명된 레바논의 라픽 하리리 총리는 국민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경기장을 재건축하기로 결정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인근국가 왕조들에게 2500만 달러의 원조를 받았다. 여기에 레바논 정부가 7500만 달러를 보태 15년 만에 전통의 경기장을 되살려냈다.

레바논은 2000년 새롭게 태어난 구장에서 아시안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부활을 알렸다. 당시 대한민국은 이동국의 결승골로 이란을 2-1로 물리친 추억이 있다. 우리와도 인연이 깊은 구장이다. 현재 스타디움 내부에는 폭격으로 폐허가 된 모습과 새로 지어진 구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당시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다.
최근 경기장 근방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레바논 정규군과 반군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반군이 경기장에서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스타디움을 쉽게 건드리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장 주변 레바논 정규군이 주둔하고 있는데다 테러는 곧 선전포고를 의미하기 때문. ‘희망의 상징’인 카밀 샤문 스타디움에서 한국이 무사히 경기를 치를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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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내부 자료사진 / 베이루트=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