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 코드가 안방극장을 점령한 요즘이다. 이뿐 아니라 돌아온 임성한 작가의 신작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공주’도 연일 독특한 장면과 대사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 모두가 방송 전 “우리 드라마는 막장이 아니다”라고 외쳤다는 점이다.
주말드라마를 꽉 잡고 있던 KBS를 누르고 주말극 1위라는 기염을 토한 MBC '백년의 유산‘은 사실 서울 변두리의 오래된 노포를 배경으로 삼대째 국수공장을 운영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리기로 ’예정‘ 돼 있었다. 또한 제작진은 방송 전 국수를 매개로 실타래처럼 엉킨 인간사를 풀어내며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전하겠다는 기획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백년의 유산’의 주요 내용에 국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세윤(이정진 분)이 가진 출생의 비밀, 이로 인해 남매가 될 위기에 처한 연인 채원(유진 분), 도저히 상식적이지 못한 채원의 시어머니 영자(박원숙 분) 등이 극을 이끌어가는 이야기다. ‘백년의 유산’에게 방송 초반부터 막장이라는 오명 아닌 오명이 들려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백년의 유산’은 제작발표회 당시 드라마가 막장이 아니라고 입 모아 말했다. 주성우 PD는 드라마에 대해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유진과 이정진 등의 출연배우들도 ”막장의 기준을 모르겠다“면서도 드라마가 막장이 아님을 강조했다.
실상 출생의 비밀 코드가 이야기 전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KBS 2TV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또한 제작발표회 당시 윤성식 PD의 입을 빌어 “막장 코드는 없다”고 단언한 바 있다. 그는 “막장 코드와는 궤도가 다르다”면서 드라마에 대해 “어른들과 아이들의 성장기”라고 밝혔다.
‘최고다 이순신’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뜻하지 않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 엄마와 막내딸의 행복 찾기와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는 드라마. 가족의 화해와 진실한 자아 찾기, 나아가 진정한 행복에 대한 그림을 그리겠다는 게 이 작품의 포부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보니 처음의 기획 의도는 출생의 비밀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있다. 호흡이 긴 주말극이라곤 하지만 주인공 순신(아이유 분)과 준호(조정석 분)의 러브라인도 지지부진하게 진행돼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엔 역부족이다.
최근 ‘막장극 부인’의 대미는 ‘오로라공주’가 장식했다. 막장극의 대모라는 임성한 작가의 신작임에도 불구하고 ‘오로라공주’의 김정호 PD는 “막장은 아니다”라면서 “경쾌하고 밝게 전개할 예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김 PD는 “인간의 페이소스를 건드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임 작가의 작품에 대한 ‘막장 오해’에 해명하기도 했다.
'오로라 공주'는 이러한 김 PD의 적극 해명에도 많은 이들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애완견의 점을 보는 여주인공 오로라(전소민 분), 오금성(손창민 분)의 불륜을 지지하는 형제들, 황마마(오창석 분)가 잠들 때마다 기도와 주문을 외우는 누나들까지 이해할 수 없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매 회마다 이어졌다.
예능계의 트렌드는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힐링이었다. 여기에서 관찰 혹은 다큐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식이었다. 그러나 드라마는 여전히 막장이 대세다. 오히려 대세라는 말보다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일컫는 게 더 옳은 표현에 가깝다.
물론 이러한 막장 트렌드에 대한 드라마 관계자들의 고민도 존재한다. 한 드라마 PD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막장드라마를 만들 수밖에 없다"면서 "제 아무리 막장드라마가 한국 드라마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라고 해도 시청률 때문에 새 작품을 만들 때마다 좀 더 강하고 튀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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