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마음이 기특하긴 하지만 마음이야 좋지 않습니다."
연패에 빠진 선수단이 분위기 쇄신을 위해 자주 꺼내드는 방법, 바로 선수단 삭발이다. 평소에는 1군에 있는 26명의 선수들이 각자의 개성에 따라 머리 스타일을 유지하지만 단체삭발을 하면 '빡빡머리'라는 공통분모로 하나가 된다. 실제로 삭발투혼이 팀 전력에 가져오는 효과는 차치하더라도 삭발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여전히 유효한 극약처방이다.
올 프로야구도 단체삭발을 한 구단이 벌써 둘이나 나왔다. 한화가 4월 먼저 삭발을 했고, KIA가 6월 초 삭발을 했다. 2000년 프로입단 후 한 번도 삭발을 안 해봤던 선수, 이틀 전 미용실에서 정성들여 한 머리를 서슴없이 밀어버린 선수 등 여러 사연과 함께 KIA 선수들은 외모에서 하나가 됐다. 레게머리를 고집했던 소사도, 특유의 수염을 유지했던 앤서니도 삭발행렬에 동참했다.

이를 바라보는 감독의 마음은 어떨까. 휴식을 갖고도 안방에서 LG에 3연패, KIA 선동렬 감독의 속도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선 감독의 마음이 아픈 이유는 따로 있었다. 4일 사직구장에서 만난 선 감독은 "선수들이 머리를 깎는데 기분이 좋을 감독이 어디에 있겠냐"고 되물었다. 선수단 스스로 성적 부진의 이유를 자신들에게 돌려 머리를 깎은 것에 감독 역시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다.
선 감독도 선수시절 삭발을 해 봤다고 한다. 해태가 잘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선 감독은 "그래도 성적이 안 나오는 시기가 있었다. 그때 동료들과 같이 삭발도 해 보고 내 스스로도 야구가 잘 안되면 그냥 밀고 경기장에 나가기도 했다"고 했다. 본인이 삭발을 경험했기에 선수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삭발을 한 KIA 선수들의 사연도 가지가지였다. 롯데 시절 고참 선수의 삭발에도 함께하지 않았던 김주찬은 1군 복귀 하루만에 머리를 깨끗하게 밀었다. 때문에 롯데 더그아웃에 찾아갔을 때 예전 동료들은 그의 얼굴보다는 삭발한 모습을 더욱 궁금해했다는 후문이다. 2일 선발등판 때문에 삭발에 동참하지 못했던 양현종도 4일에는 짧게 머리를 깎고 나타났고, 삼손처럼 머리를 기를 것이라고 다짐했던 최희섭은 헤어샵에서 머리를 만진지 단 이틀 만에 삭발을 했다.
그래도 선 감독은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걸 잊지 않았다. "다들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삭발을 한 것이 아니겠냐"고 말한 선 감독은 "그래도 선수들이 뭔가 해보려고 한 것 아니겠나. 그 마음이 기특하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돌입한 롯데전, KIA는 모처럼 7-2로 롯데에 완승을 거두고 환하게 웃었다. 선 감독은 "한 번 연승 분위기만 타면 된다. 우리에게는 저력이 있다"고 자신했다. 삭발로 하나 된 KIA, 그들의 저력이 어디까지 발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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