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힘들게 야구를 다시 시작해서 절박함을 안다"고 말한다. 부상에 쓰러져도 혹시라도 자신의 자리를 놓칠까 출전을 강행한다. 사람들은 투혼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에게는 야구가 생존 그 자체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정훈(26) 이야기다.
정훈은 부상으로 1군에서 빠진 조성환을 대신해 롯데 2루를 탄탄하게 지키고 있다. 35경기에 출전, 타율 2할6푼7리 2홈런 9타점 13득점으로 타석에서도 매서운 방망이를 선보이고 있다.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정훈의 모습에 김시진 감독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그칠 줄 모른다.
잘 알려졌다시피 정훈은 어렵게 다시 야구를 하고 있다. 그는 2006년 신고선수로 현대 유니폼을 잠깐 입었지만 그 해 방출됐다. 좌절감에 찾은 PC방에서 현역병 입대를 결정하고, 포병을 지원해 2년을 군대에서 보냈다. 제대 후에는 모교인 양정초등학교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다 2010년 롯데 입단테스트를 받고 다시 한 번 기회를 받게 된다. 그렇게 정훈은 꿈에 그리던 롯데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그랬던 정훈이기에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주전선수가 부상으로 빠진 틈을 타 2루를 꿰찬 정훈에게 올해는 오랜 꿈이었던 롯데 주전 내야수로 발돋움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 재작년과 작년 몇 번 찾아온 기회를 날렸던 정훈은 올해만큼은 달랐다. 안정적인 수비와 매서운 방망이로 2루를 꿰찼다.
그런 그에게 사고가 닥쳤다. 지난달 30일 사직 두산전에서 9회 파울타구를 잡으려고 질주하다 1루측 익사이팅존 펜스에 목과 어깨를 심하게 부딪혔다. 곧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에 후송될 정도로 큰 부상이 우려되던 상황이었다. 천만 다행으로 검진 결과 큰 문제가 없다고 나왔지만 김시진 감독은 그에게 이틀의 휴식일을 줬다.
쉬는 날을 받았지만 정훈을 결코 마음 편하게 앉아있을 수 없었다. 대구 원정단에 합류한 정훈은 몇 차례나 훈련을 하겠다고 그라운드에 나왔다가 이진오 수석 트레이너한테 잡혀 다시 버스로 돌아왔다. 출전을 고집했지만 김 감독의 대답은 'NO'였다.
이유가 있었다. 정훈은 "못 뛸만큼 안 아팠으니까 나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힘들게 거머쥔 주전 2루수 자리를 빼앗길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는 "내 자리라는 것은 결코 없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언제 빼앗길 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훈 역시 선배의 자리를 차지한 것. 당연히 출전을 고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정훈은 이틀을 쉬고 2일 삼성전에 출전했다. 이날 정훈은 팀 패배에도 불구하고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특히 7회 동점 적시타는 부상에 대한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주는 귀중한 한 방이었다.
여기서도 한 뼘 더 성장한 정훈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단순하게 조급한 마음으로 출전을 고집했다면 삼성전 멀티히트는 나오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우려섞인 시선으로 지켜보는 눈이 많은 가운데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그는 "압박감에도 편하게 야구하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가 있다면 난 후자에 가깝다. 간절하게 바라니까 야구가 되더라"고 말했다.
아찔했던 부상 속에서도 정훈은 얻은 것이 있다. 자신이 뛰고 있는 그라운드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고, 선수에게 몸이 재산인 것을 깨닫게 됐다. 첫 풀타임, 정훈은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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