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종호의 룩 패스] '포기'란 있을 수 없다...설레발이 만들 뻔한 레바논 악몽
OSEN 허종호 기자
발행 2013.06.05 07: 48

설레발이 또 다시 레바논 악몽을 만들뻔 했다.
경기도 치르지 않은 상황에서 '포기'라는 말이 어떻게 나올까? 상대의 전력이 최악에 가깝다고 해도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분명 상대방은 '포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저곳에서 자연스럽게 상대가 포기했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됐다. '방심은 금물'이라는 격언이 갖는 중요성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최강희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5일(이하 한국시간) 새벽 베이루트 샤밀 카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바논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전서 패배할 뻔 했다. 전반 12분 하산 마투크에게 선제골을 허용하다가 후반 51분 김치우의 골로 간신히 동점을 만들었다. 2년 전 패배의 악몽에서 간신히 벗어난 것이다.

레바논전은 한국에 뜻 깊은 경기였다. 2년 전의 악몽을 떨쳐냄과 동시에 조 1위로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요한 경기였지만 긴장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레바논이 조 최하위의 전력을 갖고 있고, 승부조작 파문으로 주축 선수 다수가 대표팀 옷을 벗은 상태였다. 또한 에이스 로다 안타르까지 소집에 불응하고 은퇴를 한 상태였다.
당연히 테오 부커 레바논 감독으로서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전력상 열세인 것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부커 감독은 "한국과 레바논의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우리는 한국을 이길 수 없다"며 "나는 현실주의자다. 우리는 새로운 선수가 많아 월드컵이 아니라 아시안컵이 목표다. 내일 매우 힘든 경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경기를 져준다는 말은 없었다. 그저 열세인 것을 인정하고, 월드컵 진출이 사실상 힘든 만큼 최대한 경험을 살려 2년 뒤 아시안컵을 위한 경기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받아들인 반응은 '포기', '승리 의지 찾을 수 없다'는 등이었다. 감독이 자신이 지휘하는 대표팀의 수준을 알고 현실적인 목표를 잡은 것을 폄하한 셈이다.
경기는 부커 감독이 원하는대로 됐다. 레바논은 월드컵에 나갈 수 없게 됐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경기를 했다. 레바논에는 확실한 소득이었다. 최강희 감독이 "오늘 경기는 90분 이상 끌려가다 비겼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동국과 손흥민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이 얻어낸 것은 승점 1점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히 깨달은 것이 있어야 하는 경기다. 전력이 월등히 앞선다고 해도 그건 경기 전의 이야기다. 경기 후의 결과는 평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상대적인 약팀과 대결에서는 항상 집중력과 정신적인 해이해짐을 경계한다. 그렇지만 레바논전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거리가 멀었다. '이미 포기'라는 말은 써서는 안 될 말이다. 남은 두 경기에서는 절대 나와서는 안 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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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레바논)=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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