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인해라. 팀 사정 상 어쩔 수 없었다. 이해해 다오."
롯데 자이언츠 내야수 김상호(24)는 가슴이 철렁했다. 올해 초 구단 사무실에서 자신을 부를 때까지만 하더라도 혹시 전지훈련 캠프 명단에 추가 발탁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으로 가득했었다. 하지만 롯데 구단이 그의 눈앞에 내민 서류는 신고전환 계약서였다.
신고선수는 간단히 말해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등록되지 못하고 구단에 선수로만 '신고' 되어있는 선수들을 뜻한다. 신고선수로 입단을 하는 경우도 있고, 정식선수로 등록되어 있다가 신고선수로 전환되는 경우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희망을 품고 뛸 수 있지만 후자에 속하는 선수들의 좌절감은 상상 이상이다.

장충고-고려대 출신인 김상호는 2012년 롯데에 7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고려대 시절 주장을 맡기도 했었던 그는 중장거리 타자로 팀에서 기대가 높았다. 실제로 작년 퓨처스리그에서 홈런 4개를 치면서 주목을 받았고, 9월 확장 엔트리 때는 1군 무대에 올라 안타도 신고하는 등 눈도장을 받는데 성공했다.
더 큰 꿈과 기대로 2013년을 준비하던 김상호에게 첫 시련은 전지훈련 명단 탈락. 잠시 낙담했던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잡고 상동구장에서 훈련을 소화했다. 그렇지만 롯데 구단은 그를 신고선수로 전환하게 된다. 장성호가 영입되면서 롯데 1루는 포화상태가 되고 주 포지션이 1루인 김상호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기 때문이다.
김상호는 당시를 떠올리며 "마치 선수생활이 끝나는 것 같다"다고 말한다. 5일 사직구장에서 만난 김상호는 "처음에는 전지훈련에 데려가준다는 이야기인줄 알고 구단에 갔는데 신고선수 전환 이야기를 하시더라. 그때는 정말 막막했다. 작년에 나름대로 1군에서 안타도 치고 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처음 신고선수로 전환했을 때는 야구를 그만둘까 고민까지 했었다는 김상호. 하지만 그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더 많이 방망이를 돌리고 더 많이 뛰었다. 퓨처스리그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맹훈련을 하는 김상호가 코칭스태프 눈에 안 띌수가 없었다.
권두조 2군 감독과 김민호 2군 타격코치는 김상호에게 기회를 줬다. 줄곧 4번 타자로 퓨처스리그 경기에 출전시켰다. 그리고 그는 성적으로 보답했다. 김상호는 올해 퓨처스리그 43경기에서 타율 3할1푼2리 3홈런 25타점 21득점을 기록했다. 모두 팀 내 압도적인 1위 기록이었다.
김상호는 "권두조 감독님, 김민호 코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 그분들 덕분에 내가 다시 야구에 몰두하게 됐다. 계속 믿어주셔서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퓨처스리그를 평정하고 있는 김상호, 하지만 1군에 올라올 수는 없었다. 신고선수가 정식선수로 전환이 가능한 날짜는 6월 1일, 그 전까지는 퓨처스리그에서 뛰는 수밖에 없었다.
기다렸던 6월 1일, 롯데 구단은 그가 흘린 땀을 모르지 않았다. 곧바로 정식선수 전환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4일 꿈에 그리던 1군 엔트리에 등록됐고 KIA와의 경기에서 7회 대타로 등장, 중전안타를 치면서 1군 복귀를 알렸다.
여전히 롯데 1루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렇지만 이미 한 번 좌절을 겪었던 김상호이기에 결코 약한 소리는 하지 않는다. "최대한 길게 1군에 머물고 싶다. 그리고 내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김상호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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