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MBC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는 나름대로 인기가 있으면서 욕을 얻어먹는 드라마다. 경쟁작 KBS2 '천명'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의 동시간대 경쟁작을 따돌리고 시청률 1위를 내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인기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한자릿수 시청률의 숫자는 의외로 그 내실은 그다지 알차지 않다는 증거다.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는 MBC '구가의 서'가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것과 좋은 비교가 된다. 한마디로 요란한 빈수레일 뿐이다.
그 이유는 경쟁 드라마 역시 재미가 없다는 어드밴티지에 있으면서도 정작 '남사'는 자체의 힘이 달린다는 데 있다. 그 가장 큰 핸디캡은 상황의 억지설정이다. 이 드라마는 회를 거듭할수록 상황과 설정 자체가 억지스럽게 치달으며 20회까지 이어가기에는 작가의 필력부터 PD의 연출력까지 어딘가 많이 부족해보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방송 초기 극찬을 받았던 송승헌의 연기력 등 주연배우들의 노력마저 퇴색하는 느낌이다. 송승헌은 연기경력 17년 동안 연기력 논란의 도마 위에는 올라서봤지만 연기를 잘 한다는 극찬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남사'는 달랐다. 이제 30대 후반에 들어선 그의 얼굴에서는 남성의 향기가 물씬 풍겼으며 그 향 만큼이나 연기력이 물에 올랐다. 그게 바로 '남사' 초기였다.

그는 성장과정의 커다란 아픔을 지닌 깡패 한태상을 아주 잘 표현했다. 그의 얼굴에선 늑대의 고독이 흘러넘쳤고 공허한 그의 눈빛에서는 사랑에 목마른 한 중년남자의 허허로움이 잘 느껴졌다. 하지만 서미도(신세경)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과 이재희(연우진)를 향한 맹목적인 도움이 배신으로 되돌아와 뒤통수를 치며 치정멜로에 휩싸이기 시작하면서 그의 연기력은 힘을 잃었다.
이 드라마는 중간 부분 즈음 서미도의 지나친 어장관리와 이해하기 힘든 두 남자 사이의 방황, 그리고 결국 한태상을 배신하나가는 모습에서 평론가는 물론 시청자들에게까지 욕을 먹었다. 제작진은 스스로 치정멜로로 설정한 드라마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그런 얽히고설킨 복잡한 애정방정식이 치정멜로를 그려나가기 위해 불가피함을 역설했지만 결국 종영까지 1회만을 남겨둔 지난 5일의 방송분은 스스로 정한 치정멜로라는 아이덴티티에서 벗어나 어설픈 미스터리 스릴러를 그려나가려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장르만 그려냈을 뿐이다.
이는 스스로 강조한 치정멜로를 지속시켜 나가고 그 내용을 강하게 이끌어 나가기에는 작가의 필력이 딸렸던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사랑과 의리 그리고 우애로 엮인 주인공들의 복잡한 사랑을 처음부터 잘못된 매듭으로 묶어놓고 막상 풀려고 하니 황망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분산시키려 서둘렀다는 느낌이 짙다.
서미도는 한태상에게서 벗어나고자 그렇게 노력했다. 그리고 결국 한태상의 백기를 받아내는데 성공하고 그토록 그리던 이재희의 품에 안겼다. 이재희 역시 자신의 은인이자 보스인 한태상이 서미도를 사랑하고 둘이 사귀는 것을 알고도 끊임 없이 서미도를 유혹해 결국 그녀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이쯤 되면 이 드라마의 치정멜로는 더이상 할 말이 없다. 그래서일까? 서미도는 다시 한태상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에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재희는 어긋난 한태상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비뚤어진 악행을 일삼는 가운데 자꾸만 한태상을 배려하려는 서미도에게 짜증 일색이다. 이게 그토록 맺어지고자 갈망했던 연인의 모습은 아니다.
서미도가 자신의 어릴 적 희망이었던 공연기획자의 꿈을 그리도 이루고자 했으나 중간에 좌절되면서 그게 한태상의 공작이었다고 의심하며 그에게서 마음이 떠나 이재희에게 간 점은 어느 정도 이해된다. 그렇다면 한태상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그녀는 이제 꿈의 나래를 활짝 펼쳐야 하지만 그렇게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재희는 더욱더 얼토당토 않다. 그는 자신의 형인 이창희(김성오)가 한태상의 살인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갔다 왔으며 현재 혼수상태에 빠진 게 한태상이 실컷 이용해먹고 토사구팽시키기 위해 죽이려 했기 때문이라고 크게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한태상이 이창희와 이재희에게 보여준 의리와 평소 한태상의 인간 됨됨이로 비춰볼 때 그렇게까지 오해할 수 없다. 이재희는 스탠퍼드에서 유학한 수재로서 그렇게 판단능력이 흐린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희는 그렇게 구용갑(이창훈)과 백성주(채정안)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한태상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간다.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이런 억지설정은 이재희를 더욱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잘못된 오해에서 비롯된 빗나간 복수심에 불타는 이재희는 한태상의 골든트리를 홍콩의 아시아스타 회장 장지명(남경읍)과 그의 아들 로이장(김서경)에게 넘기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런데 로이장은 사실 한태상과 어릴 때 헤어진 그의 동생 한태민이다. 로이장은 자신의 정체와 한태상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숨기고 한태상을 사무적으로 대한다. 이것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다. 만약 한태상이 한태민을 버렸다면 이런 설정은 맞다. 하지만 한태상과 한태민을 버린 사람은 그들의 어머니였고 두 형제는 똑같은 동병상련의 피해자다. 예전에 그들은 우애도 남다르게 좋았던 사이다. 이런 앞뒤 정황으로 봤을 때 로이장은 한걸음에 한태상에게 달려와 얼싸안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재회의 눈물을 흘렸어야 매끄럽다.
한태상의 왼팔 윤동구(조재룡)가 한태상과 이창희를 배신하고 그 과정에서 이창희를 사경에 빠뜨렸으며 다시 그들에게 돌아와 무릎 꿇고 사죄하며 회개하는 것도 억지스럽다. 그가 한태상을 배신한 이유는 한태상이 오른팔인 이창희를 극진하게 챙겨주는 반면 자신에게는 소홀했다고 서운해 했기 때문에 한태상과 대척점에 선 구용갑에게 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윤동구가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한태상에게 되돌아왔다. 그렇게 양심적인 사람이 믿고 의지했던 형들을 배신한 것이나 바로 되돌아 온 것 등은 다분히 억지스럽다.
결국 이 드라마는 서미도를 둘러싼 한태상과 이재희의 사랑싸움, 그리고 한태상에 대해 오매불망 해바라기 사랑을 하는 백성주를 통해 그려내려는 치정멜로를 매끄럽지 못하고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가운데 그 내용을 제작진 스스로 감당해내지 못하고 다른 얘기로 부족함을 메꾸려다 이도저도 아닌 사생아를 낳고 만 상황이 돼버렸다.
절정은 백성주가 한태상에게 결혼하자고 제안하자 아무런 고민 없이 그러자고 대답한 지난 5일 분 방송의 마지막 장면에 있다. 비록 한태상이 서미도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에 괴로워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외로움에 몸서리 칠 수 있겠지만 평소 친구로서는 살갑게 대할지 몰라도 여자로서는 벌레 보듯 했던 백성주의 제안을 그렇게 쿨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그의 현재 정신상태가 엉망진창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로이장에게 골든트리를 빼앗기고 만신창이가 됐다면 모르겠지만.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