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의 시작은 좋았다. 송승헌과 신세경의 연인 호흡과 ‘적도의 남자’, ‘태양의 여자’ 등을 집필한 김인영 작가의 만남은 방송 전부터 명품 멜로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며 시청자들을 들썩이게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 드라마가 끝나고 나니 남은 것은 허무한 실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 이 드라마에 대해 ‘용두사미’라 설명하는 것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이하 ‘남사’)는 지난 6일 오후 20회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스스로를 치정 멜로라 정의내리고 화려하게 시작한 이 드라마는 방송 내내 수목극 1위를 달렸다. 그러나 길을 잃고 헤매는 스토리와 설득력 없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남사’에 한자릿수 시청률 1위라는 초라한 왕좌를 선사했다.
처음 '남사'는 치정 멜로의 묘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미남 배우 송승헌이 아픈 과거를 간직한 조직폭력배 태상으로 분해 당돌한 여고생 미도로 분한 신세경을 만나고 그와 사랑에 빠지고, 거기다 순수한 청년 재희(연우진 분)와 미도가 위험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는 안방극장을 강타하기 충분했다. 출연 배우들과 김인영 작가의 이름이 아깝지 않은 드라마였다.

그러나 점점 드라마는 허술함을 드러냈다. 특히 이 드라마가 보여준 허술함은 미도가 보여준 감정의 흐름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재희에게 향하는 마음이 조심스럽게 그려진 초반부는 썩 괜찮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해가지 않는 미도의 ‘어장관리’는 보는 이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미도만을 바라보는 태상의 행동도 그다지 호소력 있지는 못 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은 한결같았다. 이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성격이나 행동의 변화 없이 언제나 같은 사람이었다. 태상은 계속 정의와 순정을 지닌 멋진 남자였고, 미도는 개인주의적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여자였다. 잠시 극의 말미 재희가 태상을 몰락시키기 위해 차가운 악역으로 변신하는가 싶더니 이내 오해를 풀고 원래의 착한 그로 돌아왔다. 그러다보니 미도가 무슨 배신을 하든지 태상은 당하기만 했고, 태상이 어떤 애정을 드러내도 미도는 이기적이었다.
‘남사’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해피엔딩의 극단으로 흘러가며 허무한 결말을 맞았다. 너무나 사랑해서 태상의 해바라기 사랑마저 버리게 했던 미도와 재희의 사랑은 허무한 이별로 끝났다. 오랜 시간 마치 커다란 비밀처럼 긴장감을 조성했던 재희가 가진 출생의 비밀도 장지명 회장(남경읍 분)과 재희의 눈물, 포옹으로 대충 매듭지어지기도 했다. 또한 오랜 시간 태상만을 바라보던 성주(채정안 분)의 마음은 마치 득도한 사람처럼 웨딩드레스를 입고 홀로 강가에서 독백을 하는 걸로 정리됐다.
그 와중에 배우들은 빛나는 열연을 펼쳤다. 그동안 오랜 연기 경력에도 연기력 지적을 받곤 했던 송승헌은 우수에 찬 눈빛과 조각같은 얼굴로 순정남 태상을 표현했다. 또한 연우진은 불 같은 사랑에 빠진 순수 청년 이재희 그 자체로 변신했고, 오랫동안 태상만을 바라본 여자 백성주는 채정안의 도도한 표정과 대사로 새로운 캐릭터가 됐다. 특히 미도 역의 신세경은 이 드라마로 ‘어장관리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는 그가 그만큼 미도라는 역할을 호소력 있게 연기해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두 달 여의 시간동안 안방극장을 찾아왔던 ‘남사’는 퇴장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김인영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기엔 역부족일 듯하다.
한편 오는 12일부터는 ‘남사’ 후속으로 ‘여왕의 교실’이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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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