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안 오더라고요… 왜요? 배가 고파서요”
6일 마산구장에서 NC와의 경기를 앞둔 SK 주장 정근우(31)가 빙그레 웃었다. 정근우는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그가 밝힌 대답은 “배가 고파서”라는 원초적인(?) 이유였다. 정근우는 “전날 저녁을 먹지 못해 그런지 엄청 배가 고프더라. 그래서 다음날 아침 식사가 준비되자마자 나가서 먹었다”며 주위를 폭소하게 만들었다.
분위기 전환을 위한 ‘빅 마우스’의 일상적인 농담이었다. 하지만 그 사연을 다시 들여다보면 그냥 농담으로 흘려듣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SK는 5일 NC에게 5-11로 완패했다. 5회까지는 비교적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6회 이호준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하며 완전히 기세를 뺏겼다. 이후 계속된 실점으로 NC에 무려 11점을 내주고 철저히 무너져 내렸으니 선수들의 속이 편할 리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분함을 감추지 못한 선수가 바로 정근우였다. SK 관계자는 “경기가 끝난 뒤 정근우가 씩씩대면서 라커룸에 들어가더라”고 했다. 참패에 대한 분함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 그리고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정근우는 “솔직히 좀 분해서 저녁 식사는 생각나지도 않더라”라고 돌아봤다. 배가 고팠다는 것은 그저 농담일 뿐, 정근우가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은 경기에 대한 분함이 팔할이었다.
SK는 최근 위기에 빠져 있다. 하위권 팀들을 철저하게 잡던 예전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제는 하위권 팀들에도 “SK는 해볼 만하다”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SK로서는 큰 손해다. 정근우는 이 질문에 대해 “다 우리 잘못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하지만 승부욕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근우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속이 끊지 않을 수 없다.
부진한 팀 성적에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 있다. 사실 정근우는 최근 몸 상태가 아주 좋지는 않다. 자신이 친 타구에 왼쪽 정강이 부위를 맞아 아직도 회복이 덜 됐다. 안 좋은 정강이 상태 탓에 햄스트링에도 연쇄적인 무리가 갔다. 최근 경기 중간 교체되는 것도 선수보호차원이다. 그러나 정근우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꾸 신경을 쓰다보면 경기력에 지장이 있을까봐서다.
자유계약선수(FA) 신분을 앞둔 선수들 중에는 간혹 몸을 사리는 선수들도 나온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근우에게는 해당사항이 별로 없는 이야기다. 언제나처럼 파이팅을 외치는 정근우의 투지는 분위기가 처진 지금의 SK에 가장 절실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주장의 투지가 팀 내에 퍼져 반등의 물결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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