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늦게 피우고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여기에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타율-홈런-타점 등에서 TOP5에는 들어야 됩니다”.
지난 시즌에는 4번 타자에게도 번트를 지시했던 감독은 새로운 4번 타자를 믿고 또 ‘아직 더 많이 커야 한다’라며 채찍질도 잊지 않았다. LG 트윈스의 새 4번 타자 정의윤(27)은 김기태 감독의 믿음과 질책, 격려 속에 진짜 프로 선수가 되어가고 있다.
정의윤은 올 시즌 46경기 3할1푼3리(10위) 2홈런 20타점을 기록하며 LG의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 중이다. 6월 5경기서 3할3푼3리(21타수 7안타) 3타점으로 팀의 상승세에 힘을 보태고 있는 정의윤은 현재 중심타선에 배치되어 확실한 기회를 얻고 있다.

부산고 시절 공수주를 두루 갖춘 천재타자로 각광받았던 정의윤은 2005년 2차지명에서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LG의 선택을 받았다. 데뷔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이순철 감독은 물론이고 이후 인스트럭터로 초빙되었던 이토 쓰토무, 세이부-요미우리의 전설적 타자였던 기요하라 가즈히로 등이 정의윤의 잠재력에 대해 극찬했으나 만개하지 못했던 정의윤이다.
선수의 성장세가 주춤하기도 했으나 오랫동안 하위권에 머물러 성적을 올리는 데도 혈안이 되었던 LG의 팀 상황도 정의윤에게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김 감독이 정의윤의 가능성을 믿고 장기적 관점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6일 두산전서 0-2로 끌려가던 4회말 무사 1,2루 상황은 김 감독이 정의윤을 얼마나 믿고 있는 지 알 수 있게 했다. 지난 시즌 정성훈을 4번 타자로도 중용했던 김 감독은 번트가 필요할 때는 4번 정성훈에게 번트를 지시하기도 했다. 연결형 4번 타자로도 활약했기 때문. 그러나 정의윤에게는 번트가 아닌 ‘네 스윙을 하라’며 지켜봤다.
그리고 정의윤은 더스틴 니퍼트와 풀카운트 8구까지 가는 대결 끝에 좌익수 키를 넘는 1타점 2루타로 팀의 4회 3-2 역전에 크게 공헌했다. 니퍼트-최재훈 배터리가 좌우 코너워크로 정의윤의 일축을 노렸으나 정의윤은 커트와 선구안으로 상대를 압박한 뒤 몸쪽 공이 몰리자 주저없이 이를 당겨쳤다. 이날 좋은 구위를 선보였던 니퍼트였으나 정의윤은 힘과 컨택 능력으로 2루타를 때려냈다. 5일 경기서는 8회 김재호가 잘 밀어친 타구를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내며 수비 능력까지 과시한 정의윤이다.
현재의 상승세를 칭찬하면서도 김 감독은 정의윤에 대해 냉정함도 잊지 않는다. “늦게나마 자기 잠재력을 현실화하고 있지만 많은 재능을 가진 선수인데 지금 잠깐 잘 나가는 것에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정의윤이라면 타율-홈런-타점 등에서 TOP5 안에 들어야 하는 선수”라며 채찍질도 잊지 않았다. 김 감독 자신도 20여년 전 신생팀 쌍방울의 4번 타자로서 스스로 부딪히며 경험과 기량을 쌓아 국내 최고 좌타자로 우뚝 섰던 만큼 정의윤도 앞으로 다가올 벽들을 기량의 절차탁마로 넘어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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