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최나영의 연예토피아] 가수 이효리는 한국 연예계에서 조금은 '특별한' 연예인이다. 톱 아이돌 출신으로서는 거의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배우 겸업에 실패했다. 같은 그룹이었던 핑클의 성유리, 이진, 옥주현, SES의 유진을 비롯해 이후 등장한 수많은 인기 아이돌들이 배우와의 겸업을 비교적 순조롭게 해나가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혹자는 이효리의 '센'이미지가 배우로서의 변신에 걸림돌이 됐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정작 이효리가 배우에 도전할 당시는 이런 센 이미지가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전이었다. 더욱이 무대 위에서 별별 모습을 다 보여준 엄정화는 배우로도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효리는 지난 2005년 초 방송된 SBS '세잎클로버'를 통해 혹독한 연기자 데뷔식을 치렀다. 이 작품은 효리의 첫 정극 도전으로 방송 전까지만 해도 팬들의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드라마는 기대 이하였다. 방송 도중 연출자를 교체하는 극약처방에도 진부한 이야깃거리와 미스캐스팅 그리고 경쟁드라마(쾌걸춘향)의 선전으로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불명예를 안았다. 이효리 본인에게도 연기력에 대한 평가가 갈렸고 더 나아가 '드라마 클로즈업에 맞지 않는 얼굴'이란 말까지 들었다. 이후 그는 뮤직드라마 등을 통해 간간히 연기를 선보였지만 정극에 출연한 적은 없다. 그야말로 '단 한 번의 도전'이다.
누군가는 당시 이효리는 배우를 꼭 하지 않아도 될 만한 가수로서의 위치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절박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한 번의 도전으로도 충분했다고 이야기한다. 일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본인에게는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이효리는 몇 년 후 방송에서 이에 관한 심경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청률을 보고 운 적이 있다.연기에 대해 지도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덜컥 주인공이 됐다. 혼자 이끌어 가야 하는 드라마였는데, 첫 방송에서 13%가 나오더니 이후 점점 내려갔다. 많이 기대를 하고 한 작품인데 눈물이 많이 났었다"며 울고 말았다.
본업인 가요를 비롯해 예능프로그램, 광고 등에서 두루 '효리 효과'란 말이 통용되지만 드라마에서는 제동이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결과론적이지만, 배우 이효리의 실패는 잘 됐던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돌에서 섹시 아이콘, 소셜테이너로 변신, 여기저기에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이효리에게 '만들어져야' 하는 이미지는 덫일 수 있다. 톱 여자스타의 위치를 단 번에 드러내는 화장품 등의 인기 CF를 그래도 거부할 수 있는 건 이효리가 여배우가 아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효리가 예능에서 '효리 효과'란 말을 듣는 것은 그가 다른 여자 연예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과감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에도 망설이는 기색 없는 시원한 답변, 굳이 묻지 않아도 궁금한 점을 알아서 긁어주는 센스,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의 솔직함 등은 예능에서 이효리에 대해 갖는 기대감이다. "1박 2일에 불편한 사람이 있다", " "공개연애니까 사이가 좋아 보여야 한다" 등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막힘없는 발언은 이효리 또래의 여배우에게는 거의 발견할 수가 없다.
이효리는 배우 겸업에 실패하면서 필연적으로 가수로서의 고민에 좀 더 집중했을 것이다. 현재 이효리는 작곡, 작사를 하고 비교적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틀에 박힌 아름다움이 아닌 뮤지션으로서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고 보여진다.
이효리는 한국에서는 엄정화, 외국에서는 마돈나 등처럼 여가수로서 장기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90년대 아이돌 출신으로서는 이효리처럼 긴 생명력을 갖고 가요시장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은 없다.
이는 기획 아이돌들이 넘쳐나고, 적절한 여자 멘토 가수가 없는 요즘 가요계에 확실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던 이효리에게 연기 실패란 브레이크는 가수로서도 자만할 수 있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또 이효리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연기자였다면 엔터테이너를 넘어 소셜테이너가 된 그의 정체성은 확고해지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소셜테이너는 돈-인기를 유념했을 때 쉽지 않은 행동이자 이미지다. 하지만 배우는 꾸준히 작품에 연연할 수 밖에 없고 오히려 자신을 버리고 그 캐릭터로서 살아가는 시간이 많음을 상기할 때, 본인의 이미지가 이미 브랜드가 된 이효리는 오히려 독이 됐을 수도 있다. 이런 상태에서 연기자로 대중을 만난다면 '캐릭터가 아닌 이효리만 보인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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