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 분석을 보고 경기 기록지를 보면 의아한 점이 있다. 양 팀 선발 투수들 모두 좋은 구위와 나쁘지 않은 제구를 보여줬는데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실점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는 투구폼에서 나오는 버릇을 상대가 간파하고 노림수 타격을 나섰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KIA 타이거즈 좌완 영건 양현종(25)과 넥센 히어로즈 외국인 좌완 앤디 밴 헤켄(34)에게 8일 목동 경기는 말 그대로 힘들었다.
양현종은 8일 목동 넥센전에서 시즌 7승 째를 올렸으나 5⅓이닝 동안 6피안타(1피홈런, 탈삼진 3개, 사사구 3개) 4실점으로 기대만큼 뛰어난 피칭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나마 양현종은 승리라도 따냈다. 밴헤켄은 6이닝 10피안타(탈삼진 2개) 7실점하며 2일 두산전 7이닝 10피안타 8실점 7자책투에 이어 2경기 연속 부진으로 패배를 당했다.
기록만 보면 좌완 에이스들답지 않은 부진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경기 내용과 이들의 평소 구위 등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 부진할 투구는 아니었다. 양현종은 최고 150km의 직구와 함께 슬라이더-체인지업을 섞어 던졌는데 총 101구 중 스트라이크 65개, 볼 36개로 배분이 안정적이었다. 어이없이 빠지는 등의 공은 자주 나오지 않았다.

최고 140km대 초반, 평균 130km대 중후반의 직구를 던지던 밴헤켄의 경우는 최고 145km, 평균 140~141km로 나은 구위를 보여줬다. 95구 중 스트라이크 64개, 볼 31개로 안정적이었고 무엇보다 사사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한 야구인도 “두 투수 모두 평상시에 비하면 크게 떨어지는 공은 아니었다”라고 밝히기도. 그렇다면 이들은 왜 예상보다 많은 실점을 했을까.
최근 들어 밴헤켄의 경우는 투구 버릇이 상대에게 노출되었다는 평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밴헤켄이 빨리 수정하지 않는다면 중후반 맞아나가는 경기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양현종의 경우는 아직 크게 버릇이 알려지지는 않았다는 평이 많지만 염경엽 넥센 감독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염 감독이 넥센 주루코치로 재직했을 당시 팀 도루 179개로 1위에 올랐다. 발이 빠른 편은 아닌 박병호, 강정호가 나란히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을 정도. 야수들에게 도루를 권장하는 경우도 많았으나 염 감독이 상대 투수들의 투구 버릇 등을 잘 포착하고 도루하는 타이밍을 잘 잡아 누상의 주자들에게 작전을 지시했다. 한 야구 관계자는 “염 감독이 지난해 7개 구단 투수들의 투구 버릇을 잡아내는 데는 국내 최고급이었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8일 경기를 앞두고도 염 감독은 양현종의 지난 경기 투구들을 예의주시하며 최대한 분석하고자 했다. 투수들의 밥줄이 걸린 예민한 사안인 만큼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양현종의 투구 버릇이 넥센 측에 포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상대방의 약점을 잘 알고 그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팀이 최근 들어 강세를 보이고 있다. 그만큼 전력 분석의 힘은 현대 야구에서 더없이 중요시된다. 양현종과 밴헤켄의 8일 목동 경기 고전은 이들에게 또 하나의 숙제를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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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