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팀에 들어온 신고선수는 모든 것이 생소한 듯 시선을 고정시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때마침 훈련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향하던 선배는 말없이, 그러나 따뜻한 눈빛으로 주먹을 맞부딪히자며 오른 주먹을 들어보였다. 우여곡절 많은 야구 인생으로 선입견도 컸던 ‘BK' 김병현(34, 넥센 히어로즈)은 고양 원더스 출신 신고선수 김정록을 그렇게 반겼다.
성균관대 2학년 시절이던 1998년 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한 김병현은 이듬해 시즌 중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뒤 핵잠수함 마무리로 활약하며 2001년 월드시리즈 무대도 밟고 우승 반지로 얻었다. 2002시즌에는 당당히 올스타전에도 나서며 승승장구했으나 어느 순간 부침을 겪으며 쉽지 않은 인생을 보냈다.
2011년 일본 라쿠텐을 떠난 후 2012년 1월 자신의 해외파 특별지명권을 지닌 현대의 후신격인 넥센 히어로즈의 선택을 받은 김병현. 지난해 한국 무대 첫 시즌 과도기를 거치며 19경기 3승8패3홀드 평균자책점 5.66을 기록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팀 비시즌 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호흡을 맞춘 김병현은 현재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지키며 9경기 4승2패 평균자책점 4.67을 기록 중이다. 경기마다 좋을 때도 있고 난조를 보일 때도 있으나 그는 제 자리를 지키며 자기 몫을 하고 있다.

사실 김병현은 이야기를 나누기 전 야구에 대한 세밀한 이야기나 메이저리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올 시즌 삼가겠다고 밝혔다. 미리 위화감을 조성하는 발언을 삼가고 팀을 위해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확실한 성적을 올린 후 제대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뜻이다. 함께 시즌을 치르는 동료들과 조화되어 더욱 집중하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이다.
“지금 우리 팀은 굉장히 잘 조화되고 있습니다. 선수 개개인이 스스로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임무를 확실히 파악하고 있고 더 뛰어야 하는 위치임을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았으니까”.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며 선두 자리에서 순항 중인 넥센이지만 ‘처음’이라는 데 더욱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팀의 목표를 선수 개개인도 확실히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선배들이 인위적으로 후배들을 다잡아서 위계질서를 구축한다거나 하는 모습으로 팀워크가 조성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선수단은 선후배들이 팀 내에서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 지 그리고 팀 내에서 어떤 위치인지 잘 알고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는 상태로 보시면 됩니다”.
2012년 1월 기존 선수들이 미국 애리조나에서 1차 전지훈련을 치르는 중 입단계약을 체결하며 넥센 유니폼을 입은 김병현. 사실 이는 팀워크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었다. 높은 이름값의 전직 메이저리거가 팀에 도중 합류하는 만큼 기존 선수들과도 확실한 조화가 되려면 생각보다 더욱 큰 노력이 필요할 수도, 안 좋은 경우 마찰이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어려움이 없었어요. 우리 선수들 모두 착하잖아요. 팀 적응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김병현을 지켜본 구단 관계자는 “굉장히 소탈했다. 선후배와 즐겁게 잘 어울리는 선수”라며 칭찬했다. 메이저리그 출신 스타플레이어라는 화려한 이름값에도 완벽하게 팀에 적응 중인 김병현은 종잡을 수 없던 예전의 일로 인한 잘못된 선입견을 확실히 없애고 있다.
베테랑이 팀에 선물하는 것은 단순히 좋은 경기력 뿐만이 아니다. 경험을 갖춘 선배로서 후배들의 기를 북돋워주고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는 것도 베테랑의 몫이다. 신고선수 김정록을 향해 보여준 웃음과 주먹 맞부딪히기. 그리고 긍정의 힘. 김병현의 짧은 이야기와 행동에는 넥센의 선두 순항 이유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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