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드라마 속에는 ‘나쁜 남자’가 대세다. 남자 주인공들은 까칠한 매력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철없이 행동하고, 여자 주인공과 티격태격하며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여자 주인공의 사랑에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모성애를 자극, 사랑을 쟁취한다.
그런데 KBS 2TV 종영 드라마 ‘직장의 신’의 무정한 팀장은 달랐다. 늘 웃는 얼굴에 배려 넘치는 행동으로 여자 직원들과 약자의 편에 섰다. 올바른 그는 너무 착하고 우유부단하다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늘 올바름을 추구, 무공해 미소로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훔쳤다.
그런 무정한 팀장을 연기한 이희준(33)도 무정한에 쏟아지는 사랑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기 요인을 잘 모르겠어요. 너무 착해서 매력이 없는 남자를 연기해보겠다고 생각했지, 인기에 대한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무 팀장이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모습이 답답했거든요. 그런데 드라마 방송 후에 ‘그런 상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고 실제 각 회사의 팀장들이 무정한의 캐릭터를 보고 느끼는 게 있었다면 이 드라마가 성공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죠.”
무 팀장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던 이희준의 솔직 고백이 이어졌지만, 분명한 것은 무 팀장이 이희준을 만났기 때문에 이렇듯 큰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다. 이희준의 넉살 좋은 웃음과 사투리 억양이 미묘하게 섞인 말투, 푸근하고 따뜻한 인상에서 풍기는 여유는 안방극장에 힐링을 선사했다.
“원작의 느낌과는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무팀장에 내 개성을 더 넣으려고 했어요. 착하기만 한 캐릭터는 리얼리티가 없을 것 같았어요. 무팀장이 착한 행동을 하지만 불쾌감과 자존심이 상하는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똑같은 사람이지만 천사 같은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중점을 뒀습니다.”

특히 무 팀장은 극중에서 미스김(김혜수 분), 장규직(오지호 분)과의 삼각 러브라인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모태솔로로 밝혀진 무 팀장이 미스김에 용기를 내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그들이 커플이 될 것인지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무팀장은 미스김에 칼같이 거절당했고, 이후 달라진 점 없이 회사 생활을 충실히 수행해나가는 모습으로 현실감을 더했다.
“원작에는 무팀장의 역할이 작아서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하는데 ‘직장의 신’에서는 정주리(정유미 분)를 챙기거나 미스김에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작가님께 고마웠어요. 실제로는 약한 미스김이 강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무팀장이 여자들에게만 잘한다는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자 직원들에도 공평하게 잘 해줬어요. 하하”
‘직장의 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를 통쾌하게 비틀어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는 비정규직인 배우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었을 터.
“저도 정규직을 해 본적이 없어요. 여의도를 지나면서 넥타이 부대를 봤을 때, 막연히 ‘나와 다른 사람이겠지’라고 생각했었어요. 이 드라마를 하기 전에는 정장을 그렇게 많이 입어본 적이 없어요. 굉장히 불편한 옷인데, 그런 옷을 입고 매일 일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존경스러웠어요.”
“직장인들은 정장을 입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시간에 밥을 먹어요. 점심시간에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이 작지만 큰 유희고, ‘내일 보자’라는 말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인 줄 알게 됐어요. 퇴근할 때마다 인사하는 그런 것들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큰 사랑을 받았던 ‘직장의 신’은 미스김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계약을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 돼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러브라인 또한 열린 결말로 마무리돼 시청자의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극중 인물들이 아무하고도 연결이 되지 않고 여지를 두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었던 결말 같아요. 뒷얘기가 궁금하겠지만, 시즌2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해요. 이미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이었으니까요.”
전작 ‘전우치’를 마치고 바로 ‘직장의 신’을 촬영하느라 잠깐의 휴식도 없던 이희준이었다. 그는 김혜수와 오지호 등 출연 배우들을 보고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전하며 그들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게 촬영을 마쳤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시청자 여러분도 매 순간이 더욱 소중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의무감 때문에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일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고 싶어요. 너무 착해서 매력 없는 무정한을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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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