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의 18.44m]투수 능력만 본다면 ERA 1위는 윤성환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3.06.10 06: 09

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데이터는 평균자책점(이하 ERA)이다. 그 투수가 9이닝을 던졌을 때 평균적으로 몇 점의 자책점을 허용하는가를 계산해놓은 수치다. ERA는 야구를 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공통 언어다.
그렇다고 해서 ERA가 그 투수의 능력을 완벽하게 설명해주는 데이터는 결코 아니다. 계산 방식이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알아보기 쉽다는 장점은 있지만 투수의 능력만을 설명하기에는 ERA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많다. 팀의 수비능력만 하더라도 그렇다. 좋은 수비력을 갖춘 팀에서 뛰는 투수는 그렇지 못한 투수에 비해 ERA에서 이득을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등장한 데이터가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 바로 FIP(Fielding Independent Pitching)이다. 대표적인 야구통계학자 톰 탱고가 고안한 수치로 투수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삼진, 볼넷, 피홈런, 사구만을 놓고 평균자책점과 비슷한 수치로 표현한 것이다.

FIP는 타격 이후의 일은 투수에게 일절 책임을 묻지 않는다. 즉 야구에서 수비라는 변수를 지워버린 데이터라고 볼 수 있다. 수비와 무관한 투수의 능력만을 보기 위해 개발된 FIP이기 때문에 그렇다. 계산 공식은 다소 복잡한데 13*HR + 3*(BB+HBP) - 2*K / IP + C(리그 상수)를 통해 구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피홈런은 투수의 FIP를 올리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고 볼넷과 사구 허용 역시 불리하다. 대신 탈삼진이 많고 많은 이닝을 소화할수록 FIP는 내려간다.
 
현재 프로야구 ERA 1위는 SK 크리스 세든(1.56)이다. 그렇지만 FIP 1위는 삼성 윤성환(2.50)이다. 윤성환은 볼넷(11개)과 사구(1개) 합계가 12개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가운데 가장 적었다. 안정적인 제구력과 탈삼진(57개) 능력, 그리고 적은 피홈런(3개)이 윤성환을 1위로 올려 놓았다.
FIP를 통해 투수의 ERA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메이저리그 통계에 따르면 선수들의 FIP는 커리어 통산 ERA에 수렴한다고 한다. 즉 FIP에 비해 ERA가 지나치게 높으면 경기에서 운이 따르지 않았다는 의미가 되는데 향후 ERA가 낮아질 것을 기대해도 좋다는 의미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투수가 장기적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FIP를 통해 짐작이 가능하다. 2006년 18승 6패 204탈삼진 ERA 2.23을 기록했던 류현진의 그 해 FIP는 2.15로 오히려 ERA보다 낮았다. 즉 신인 때 리그를 평정한 류현진의 성적은 결코 운이 아니었다는 걸 말해준다.
흥미로운 선수는 한화 이브랜드다. ERA는 5.98로 규정이닝을 채운 30명 가운데 최하위이지만 FIP는 3.27로 10위에 올라 있다. 이는 곧 이브랜드가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했음과 동시에 운도 없었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향후 이브랜드의 성적이 좋아질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아직 FIP가 보편화되지 않은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기록이다. 지난해 좋은 성적을 거두며 부활에 성공한 베테랑 타자는 "OPS 같은 건 잘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미국 메이저리그는 조금 다르다. FIP 자료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출현하면서 일부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
LA 다저스 우완투수인 잭 그레인키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세이버메트릭스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2009년 사이영상 수상을 할 때 "FIP를 낮추기 위한 피칭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FIP를 낮추기 위한 방법은 볼넷은 피하고 삼진을 많이 잡아내는 것, 그 때문에 공격적인 피칭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도 야구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선수의 실력을 최대한 정확하게 계량화하기 위해 새로운 데이터가 등장하고 있다. 이제는 국내에도 WHIP(이닝당 출루허용)이나 OPS와 같은 데이터가 보편화되고 있는 가운데 FIP를 통해 투수의 능력을 가늠해 보는 것도 야구를 보는 색다른 재미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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