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얻은 백인식, 5선발 향해 달린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3.06.10 14: 10

“너무 잘하려다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23일 새벽. 잠을 이루지 못하던 이만수 SK 감독은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누군가 싶어 휴대전화를 열어본 이 감독의 얼굴에는 이내 흐뭇함이 번졌다. 전날(5월 22일) 문학 NC전에서 부진한 투구로 조기 강판된 투수 백인식(26)이 보낸 문자였다.
백인식은 22일 NC전에서 1⅔이닝 4피안타 1볼넷 2탈삼진 3실점하고 조기 강판됐다. 전 경기였던 5월 16일 광주 KIA전에서 5회까지 노히트 경기를 펼치며 깜짝 승리를 따냈기에 아쉬움이 더 큰 경기였다. 경기 후 이 감독은 백인식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보라”라고 했는데 이 감독과 마찬가지로 잠을 이루지 못한 백인식이 끙끙대며 보낸 문자에는 정답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 감독은 “문제점을 알았으니 잘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감독의 예감은 맞았다. 백인식은 지난 7일 문학 한화전에서 7⅔이닝 6피안타 5탈삼진 2실점(비자책) 호투로 시즌 2승째를 따냈다. 경기 초반 고비를 넘긴 뒤 승승장구했다. 한 때 완투를 생각할 정도의 페이스였다. 비록 8회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아쉽게 실점했지만 앞으로의 전망을 밝히기에 충분한 투구 내용이었다.
사이드암이지만 최고 140㎞ 중·후반의 공을 던질 수 있는 백인식이다. 아직 젊고 어깨가 싱싱하기에 구속에 미련을 버리지 못할 나이다. 하지만 백인식은 “잘 하려고, 구속을 내려고 하니까 오히려 더 안 되더라. 힘 있는 직구를 던지려고 하니까 오히려 공도 안 가고 제구도 안 됐다”고 했다. 너무 잘 하려다 탈이 나는 신진급 선수들의 전형적인 악순환이었다. 백인식의 호투 비결은 빠른 발상의 전환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생각했고, 앞으로를 생각했다.
백인식은 “어차피 난 삼진을 잡는 투수는 아니다. 힘을 빼고 던졌다. 그랬더니 오히려 더 잘 된 것 같다”고 생긋 웃었다. 실제 이날 백인식의 최고 구속은 140㎞대 중반으로 평소보다 느렸다. 그러나 그만큼 제구가 살아났고 하나씩 쌓이는 아웃카운트 속에 자신감도 같이 쌓였다. 백인식은 “오늘 못 던지면 2군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던졌다”고 해맑게 웃었다. 신진급 선수들에게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여유다.
시즌 2승을 거둔 백인식은 당당히 SK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다. 주인이 없던 5선발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 백인식은 “선발 기회가 없을 줄 알았다. 선발이 편하지만 중간이라도 1군에서 많이 던져보고 싶다”라며 겸손해했다. 그러나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백인식은 “시즌이 많이 남았다. 크게 늦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면서 “선발 10경기와 50이닝 이상이 1차적인 목표였다. 이를 달성한 뒤 다음을 바라보겠다”라고 당차게 말했다. SK 코칭스태프는 백인식의 최대 장점에 대해 “거침없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여기에 긍정적이고 유연한 사고방식까지 더했다. 잃을 것이 없다는 패기와 함께 백인식이 이제 막 출발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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