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인 잔디 상태, 그리고 우천.
지난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열린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7차전에서 1-0으로 승리한 한국은 긴 패스 위주로 경기를 운영했다. 소위 '뻥축구'라 불리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뻥축구였다. 보다 효율적이면서 경기를 주도할 수 있게끔 만든 뻥축구였다.
한국은 최근 경기서 긴 패스 위주의 경기를 보여 많은 비난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세인 팀들이 수비라인을 내리고 모든 선수가 수비 가담을 하는 등 밀집 수비를 한 영향이 컸다. 심지어 측면 공격수들도 수비에 가담해 엔드라인 앞을 지킬 정도였다. 좀처럼 공간이 생기지 않은 탓에 선수들은 무심코 긴 패스와 긴 크로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전은 평소와 상황이 조금 달랐다. 무엇보다 짧은 패스를 펼칠 조건이 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우천시에는 긴 패스의 빈도가 높아진다. 짧은 패스의 경우 잔디가 물에 젖어 공의 방향이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르게 가고, 패스의 속도 또한 달라진다. 공을 패스하는 선수와 받는 선수의 호흡이 중요한 상황에서 그 호흡이 의도치 않게 무너지는 것이다. 또한 그라운드가 울퉁불퉁할 경우에는 짧은 패스를 자제한다. 공이 땅을 스치면서 불규칙하게 튀어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패스를 준 선수의 의도와 다르게 공이 향한다면 패스 성공률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두 가지 악조건이 모두 존재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잔디는 최근 잇달아 열린 콘서트와 같은 행사로 평평하지 않았다. 잔디도 많이 훼손되어 곳곳마다 새잔디가 이식되어 있었다. 당연히 최상의 그라운드 상태는 아니었다.
이날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긴 패스를 자주 시도한 박종우(부산)는 "긴 패스를 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비가 오는 날씨에는 짧은 패스의 성공확률이 떨어진다. 또한 초반에 짧은 패스 플레이를 하려고 했는데 그라운드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긴 패스를 했는데 성공확률이 높았다. 의도한대로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박종우가 자신있게 긴 패스를 시도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196cm의 장신을 자랑하는 김신욱(울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김신욱은 우즈베키스탄 수비수들과 경쟁에서 공중으로 오는 공을 대부분 따내며 완벽하게 제공권을 장악했다. 게다가 후반 19분 이동국(전북)이 투입되면서 한국의 긴 패스 위주의 경기 운영은 빛을 발했다. 반면 우즈베키스탄의 짧은 패스 플레이는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도중에 차단돼 역습의 빌미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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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볼을 따내어 손흥민에게 연결하는 김신욱 / 서울월드컵경기장=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