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자신을 지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거가 남부럽지 않게 화려했던 김광현(25, SK)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김광현은 과거에 안주하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김광현으로 재출발을 알리고 있다.
왼 어깨 재활 여파로 시즌 출발이 늦었던 김광현은 예전에 비해 구위가 떨어졌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실제 올 시즌 성적도 예전에 비하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9경기에서 2승3패 평균자책점 3.78이다. 2010년 17승을 비롯,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45승을 기록했던 리그 대표 에이스의 위용은 아니다. 김광현도 이를 알고 있다. 김광현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하지만 성적에 관계없이 김광현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다. 김광현은 “어깨 재활 3년차인데 올해가 가장 좋다. 몸과 팔 상태가 좋기 때문에 만족하고 있다”라고 했다. 성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길 법 하지만 자신은 여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다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하고 있다.

그런 김광현은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7이닝 3실점(2자책점) 호투로 시즌 2승째를 따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 경기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김광현은 “비가 좀 그치고 마운드가 정비되니 자신감이 생기더라”라고 했다. 똑같은 공을 던지더라도 자신감 있게 공을 던지려고 했다. 5회까지 고전했지만 6회와 7회에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
변신도 시도 중이다. 직구와 슬라이더 두 구종만으로 리그를 평정했던 김광현이지만 이제는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스스로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던질 때마다 그립도 다 다르다”고 말하는 변화구도 던지고 있다. 한 단계 진화하기 위한, 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중 하나다. 3년 동안의 힘든 시기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있다.
김광현은 과거를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광현은 “예전보다는 앞으로가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을 이었다. “17승, 18승 이런 것 보다는 매 경기에 집중하면서 던지겠다”고도 했다. 과거보다는 자신의 현실과 미래를 직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광현은 회복력에 대한 질문에 “괜찮아요. 아직 26인데요 뭘”이라고 했다. 이 대답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김광현은 아직 26살의 투수고, 던진 날보다 던질 날이 더 많은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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