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의 18.44m]올 시즌 가장 불운한 투수는 배영수?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3.06.18 06: 10

스포츠에서 많이 쓰이는 말 가운데 '운칠기삼'이 있다. 운이 7이면 능력이 3이란 뜻이다. 야구와 같은 단체 종목에서도 운은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다.
투수들의 불운을 따져보자. 투수가 운이 없다는 건 무엇을 통해 엿볼 수 있을까. 빗맞은 타구가 교묘한 곳에 떨어진다면 그 투수는 운이 없다고 볼 수 있고,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하더라도 운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투수의 '운'을 어떻게 계량화 할 수 있을까.
야구통계학자(세이버 매트리션)가 개발한 데이터 가운데 BABIP(Batting Average on Balls in Play : 인플레이 상황 시 타율)라는 것이 있다. 계산 공식은 (안타-홈런)/(타수-삼진-홈런+희생타)인데 타율을 계산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단 각 항목에서 수비수가 영향을 주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를 더하거나 빼서 계산을 한다.

BABIP를 계산해 보면 타구가 페어지역으로 들어가면 투수가 누구든 간에 안타로 이어질 확률은 비슷하다는 파격적인 결과가 나온다. 이들은 더 나아가 '인플레이 타구가 안타와 범타로 갈리는 건 운이 44%, 투수가 28%, 구장이 17%, 수비가 11%의 영향을 미친다'고까지 말한다. 즉 투수가 인플레이 상황에서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28%에 그친다는 이야기가 된다.
당연히 이러한 주장은 큰 반발에 부딪혔지만 여러 가지 계산 결과는 이들의 주장이 허무맹랑한 말만은 아님을 암시한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에서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계산을 해 본 결과 150km의 투구와 130km의 투구 모두 BABIP가 유사하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고, 한 가운데 실투와 몸 쪽 제구가 잘 된 공 역시 BABIP가 큰 차이는 없다고 나타났다.
BABIP를 한국 프로야구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올 시즌 리그 평균 BABIP는 3할1푼3리다. 일단 타구가 페어지역에 들어갔을 때 안타로 이어질 확률이다. 어떤 투수의 당해 BABIP가 리그 평균, 혹은 자신의 커리어 평균보다 비정상적으로 높다면 그 해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했거나 혹은 불운하게 안타로 이어진 타구가 많았다고 해석이 가능하다.
삼성 배영수는 올해 BABIP가 3할8푼3리로 규정이닝을 채운 30명의 투수 가운데 가장 높다. 리그 평균인 3할1푼3리보다 7푼이나 높고, 자신의 프로 통산 BABIP인 3할3리보다는 8푼이 높다. BABIP에 큰 영향을 주는 탈삼진도 예년과 비교했을 때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배영수는 가장 운이 없는 투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올해 배영수의 운은 결코 나쁘지 않다. 여전히 선발투수들에게 가장 기쁜 순간은 승리투수가 됐을 때다. 올해 배영수는 12경기에 출전, 7승 2패를 거두며 다승 2위에 올라 있다. 승리 페이스는 리그 MVP를 수상했던 2004년(17승)에 육박할 정도다.
선발승과 관계가 깊은 수치는 득점지원이다. 올해 배영수가 등판한 경기에서 삼성은 평균 6점을 냈다. 팀 경기당 평균득점인 5점보다 1점이나 많이 올렸다. 이처럼 야구는 어떤 기준에서 보느냐에 따라 한 선수의 행운과 불운이 공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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