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언론에서는 조용필을 흔히 가왕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꼭 63세라는 나이를 다는데 조용필은 정작 이 두 가지를 상당히 불편하게 여긴다.
조용필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후배 가수는 많지만 이승철만큼 어울리는 가수가 또 있을까? 헤비메틀 밴드 보컬리스트 출신의 가창력 뛰어난 가수에 악기 연주와 작사 작곡까지 능한 것은 조용필을 빼닮은데다가 외모까지 뛰어나니 음악적인 면에서는 조용필에 비해 2% 부족할지 몰라도 스타성의 측면에서는 조용필보다 나은 게 사실이다.
지금 아이돌로 성공하면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게 공식이듯 노래가 히트하면 그 노래를 제목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대부분 해당 가수가 주연을 맡거나 유명 가수가 통과의례처럼 한두번쯤 영화 주인공으로 나서는 게 공식처럼 굳어진 때가 있었다.

인순이와 이은하는 1982년 영화 '흑녀'와 '날마다 허물 벗는 꽃뱀'에 나란히 출연한 바 있고 김수철은 1984년 '고래사냥'에 김범룡은 1985년 '졸업여행'에 각각 출연했다. 모두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오른 직후 바로 영화배우로서 일시적으로 외도한 것이다.
조용필과 이승철도 그런 대표적인 인물이다. 조용필은 1981년 '그 사랑 한이 되어'에, 이상은은 1989년 '담다디'와 '굿모닝 대통령'에, 이승철은 19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에 각각 출연했다.
지난 15일 방송된 KBS2 '연예가중계'의 '스타 줌인' 코너에 출연한 이승철은 지금은 거장이 됐지만 데뷔 초만 해도 별볼 일 없던 박찬욱 감독의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의 주연배우로 발탁돼 영화배우로 깜짝 변신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이승철은 인터뷰에서 "'달은... 해가 꾸는 꿈'은 개봉 첫 날 전회 전석 매진된 기록을 세운 영화다"라며 "하지만 그 다음날이 개학날이라 관객이 들지 않아 흥행에 참패했다"고 고백해 웃음을 선사했다.
또 "그것 때문에 박찬욱 감독이 한 10년 쉬었다. 그도 데뷔작이라 잘 몰랐나 보다. 죄송하다"고 박 감독에게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 2003년 국내 개봉된 '올드보이'로 이듬해 제57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새로운 세대의 감독으로 우뚝 선 거장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두운 시절은 있었다. 이승철이 미안하다고 하는 '달은... 해가 꾸는 꿈'을 비롯해 그로부터 5년 뒤 그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3인조'까지 그랬다.
하지만 그는 2전3기 끝에 우뚝 섰다.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그는 비로소 흥행감독으로 우뚝 서면서 동시에 작품성을 갖춘 감독으로도 인정받게 된다. 국내 영화계에서는 흥행면에서 봉준호 감독과 최동훈 감독을 더 알아주지만 할리우드에서 대스타 니컬 키드먼을 캐스팅해 '스토커'를 만들었을 정도로 해외에서는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그다.
이승철은 '10년'이라고 박 감독의 공백기를 표현했는데 이는 그가 그만큼 영화계에 무관심하거나 문외한이란 얘기다. 정확하게 박 감독은 '달은... 해가 꾸는 꿈' 이후 5년만에 메가폰을 다시 잡을 수 있었고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3년만에 다시 현장에 뛰어들어 '공동경비구역 JSA'를 성공시킴으로써 한국 영화계의 거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달은... 해가 꾸는 꿈'에서 '공동경비구역 JSA'까지는 10년이 아니라 8년이 걸렸고 그것도 중간에 연출 작품이 하나 더 있었다.
이승철이 박 감독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더욱더 그가 영화계를 몰라서다.
이승철이 활동하는 가요계는 철저하게 가수가 주인이다. 요즘 아이돌은 기획사에서 전문 프로듀서에게 곡작업을 맡기고 전문 안무가와 코디네이터를 붙여서 가수의 음악과 스타일을 완성하지만 결국 빛을 보는 사람은 가수 자신이다. 한 번 아이돌이 만들어지면 그 아이돌은 어느 곳에 내놔도 정상급 스타 아이돌이다. JYJ가 SM이란 큰 기획사의 동방신기라는 스타 그룹에서 벗어나 현재의 신생 기획사에 들어가서도 예전 못지 않은-어떤 면에서는 더욱 높은 위상의-활약을 펼치는 것이 좋은 예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배우라는 흥행의 '밑밥'이 있긴 하지만 사실 드라마는 작가 놀음, 영화는 감독 놀음이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물론 야구에도 감독이 있어서 그때 그때 각 포지션의 선수를 교체하고 당연히 투수도 수시로 바꾸긴 하지만 야구는 투수가 공을 던지지 않으면 절대 성사되지 않는 게임이다. 감독이 아무리 적재적소에 투수를 위치시켜도 감독이 마음먹은 만큼 투수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그 게임은 엉망진창이 된다.
요즘 거의 생방송에 가까운 절박한 환경 속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는 그래서 작가의 필력이 더욱 작품의 완성도와 흥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컨텐츠다.
그런 맥락에서 철저한 사전준비로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거치고 후반작업을 통해 더욱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이는 영화는 오롯이 감독에 의해 완성도와 재미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라는 게 워낙 사이즈가 크고 그런 만큼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하는 작업이지만 그래서 총괄하는 유일한 지휘자인 감독에 의해 철저하게 뼈대가 완성되고 외부 인테리어가 채워지는 게 영화다.
드라마에서 연기력 논란이 일면 그것은 온전히 배우의 책임이지만 영화에서는 철저하게 감독의 책임이다. 감독이 작품의 분위기와 해당 캐릭터에 맞는 연기력을 배우에게서 이끌어내야 하는 게 영화산업의 진리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가 쓰는 경우도 많다. 어떠한 경우도 콘티는 감독이 만든다. 결국 작가의 모자란 필력도 감독의 콘티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이승철은 박 감독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하등 없다. 연출부 출신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박 감독은 연출가인 동시에 작가다. '달은 해가 꾸는 꿈'도 그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그 후에도 수많은 작품을 '박리다매'라는 이름으로 영화동료 이무영과 함께 써온 그다.
더구나 그가 연출까지 했다. 그가 이승철을 캐스팅한 것은 당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정상의 가수로서 수많은 소녀팬들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고 자신이 쓰고 연출할 작품의 주인공과 이승철이 부합된다고 감독으로서 판단을 내렸으며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승철의 부족한 연기력 탓에 흥행에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박 감독의 책임이지 신인배우 이승철 때문은 아니다.
현시점에서 박 감독이 '한국 영화계의 거장' 대우를 받는 것은 마땅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거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악어는 천적이 없는 민물의 지존이지만 알과 새끼의 생존율은 20%가 채 안 된다. 한 번에 20개에서 많게는 100개의 알이 어미의 뱃속에서 나오지만 알이 도마뱀에게 먹히고 새끼가 큰 물고기에게 먹히면서 그렇게 균형을 맞춘다.
'달은 해가 꾸는 꿈'의 박찬욱은 갓 부화한 새끼악어였다. 그가 연출한 작품이 실패한 것은 이승철의 잘못이 아니라 박찬욱의 실수였다. 그건 누구보다 박 감독이 더 잘 알 것이다. 이승철이 지금도 미안해하는 '양심의 가책'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영화에 대한 무지이거나 지나친 결벽증이다.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