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입단으로 다시 한번 한국 팬들의 관심권 안에 들어오게 된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지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홈 개막전에서 위력적인 투구로 4-0 완봉승을 끌어내는 동시에, 0-0 상황이던 8회초 타석에서는 결승타가 된 선제 솔로홈런을 터뜨리는 등, 혼자서 북치고 장구까지 쳤다는 외신은 야구팬들의 흥미를 한껏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식이었다.
1973년부터 지명타자제도를 도입한 아메리칸리그와는 달리 LA 다저스가 속한 내셔널리그는 지명타자제도를 시행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투수가 타석에 등장하는 모습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본업이 투수인 선수가 공격에서도 크게 한몫을 거드는 장면은 지명타자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많이 낯설고 생소한 장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 초기 때부터 지명타자 제도를 시행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투수가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서는 어정쩡한 모습은 늘 재미있는 구경거리일 뿐이었다. 타격 연습을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투수들의 타격실력은 늘래야 늘 수 없었고 결과는 대부분 삼진, 아니면 혹간 범타로 돌아서기 일쑤였다. 타격 연습에도 일정부분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내셔널리그 투수들과의 타격 결과 비교는 비교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투수는 타석에 서 있는 허수아비에도 방심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변변한 연습 한 번 없이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한국프로야구 투수들의 배팅 역사에도 묵직한 손맛을 경험한 일이 몇 차례 기록되어 있다. 그 중 승리투수와 더불어 결승타를 함께 기록한 ‘클레이튼 커쇼’처럼 투타 기록에서 원맨쇼를 펼쳤던 기억들만을 따로 추려내 보도록 한다.
한국프로야구사에 있어 최초의 ‘승리투수+결승타’ 독식 기록은 1982년 프로 원년에 투수와 타자를 모두 섭렵했던 해태의 김성한이 보유하고 있다. 김성한은 그 해 타자로 시즌 80경기 전 경기에 출장하며 3할 5리의 타율로 타격 10위에 이름을 올렸을 뿐만 아니라, 투수로는 26경기에 출장하며 10승 5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점 2.89로 다승 공동 7위, 평균자책점 6위를 기록하는 혁혁한 전과를 올린 바 있는데, 이 와중에 두 차례나 승리투수와 결승타를 혼자 해치운 이력을 갖고 있다.
그 첫 번째 기록은 5월 15일 광주에서 열렸던 삼성과의 경기에서 탄생했다. 김성한은 2-2로 팽팽해 맞서던 연장 11회말 무사 2루에서 황규봉(삼성)을 상대로 끝내기 우전안타를 때려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는데, 이날 김성한은 0-2로 끌려가던 6회초 선발 김용남에 이어 마운드에 올라 이후 6이닝을 노히트노런(볼넷 3개)으로 막아내며 승리투수가 된 바 있다. 그런데 더욱 대단했던 일은 7회말 경기를 2-2 동점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김성한의 투런홈런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는 사실.
김성한의 두 번째 투타 독식 기록은 첫 기록을 세운지 불과 11일이 지난 5월 26일에 또 한번 이루어졌다.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펼쳐진 MBC 청룡과의 경기에서 김성한은 4-4 동점이던 연장 10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이광권(MBC)으로부터 우월 2루타(1타점)를 뽑아냈는데 이 점수가 결승점으로 이어졌다. 김성한은 5-4로 앞서는 결승점을 올리기 이전인 7회말 2사 1루에서 김용남을 구원 등판해 10회말까지 안타 1개만을 내준 채 경기를 틀어막아 개인통산 두 번째의 ‘승리투수+결승타’ 기록을 쓸어 담았다.
하지만 김성한의 경우는 원래 양수겸장(兩手兼將) 모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상 최초 순수 투수의 ‘승리투수+결승타’ 진기록은 고(故)최동원에 의해 세워졌다고 말할 수 있다.
최동원은 1984년 8월 16일 MBC 청룡과의 부산(구덕구장)경기에서 1-1 이던 8회말 1사 만루상황 때 타석에 등장, 2타점 짜리 우월 2루타를 터뜨려 경기를 롯데의 3-1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이날 선발 이진우에 이어 4회부터 마운드에 나섰던 최동원은 지명타자였던 김민호가 1루수로 나서는 바람에 지명타자가 소멸되며 타순(4번)에 오른 것이었는데, 남은 이닝(5와 3분의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최초의 진기록을 완성시켰다.
이후 역사에 마지막으로 새겨진 포지션상 투수 신분의 ‘승리투수+결승타’ 독식기록은 1985년 7월 27일 내야수 김재박(MBC 청룡)에 의해 세워졌다. 유격수로 출장했던 김재박은 삼성과의 잠실경기에서 1-1로 맞서던 연장 10회초 1사 만루에서 선발 김봉근에 이어 등판, 이해창(삼성)을 3루수 직선타구로 잡아내며 위기를 넘기고, 돌아선 10회말 1사 만루의 찬스에서 김시진(삼성) 투수를 상대로 끝내기 중전안타를 쳐내며 결승타와 승리투수 기록을 동시에 가져갔다.
그밖에 투수가 대타로 나와 결승타를 때렸다거나 야수가 마운드로 이동해 투수 노릇을 했던 경우가 몇 차례 더 있긴 했지만, 기록적으로 승리투수와 결승타를 한 선수가 모두 기록한 경우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지명타자 제도 하에서는 그러한 기록이 탄생한다는 것 자체가 더 비정상적인 일이 되겠지만, 한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주목하는 빅리거 류현진이 클레이튼 커쇼처럼 승리투수와 결승타를 함께 거머쥐는 경기를 꼭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 기대해 본다.
윤병웅 KBO 기록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