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즐기자'던 케이로스의 알 수 없는 속내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3.06.18 15: 59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이상하다. 극단적인 도발을 일삼더니 '축구를 즐기자'며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도통 속내를 짐작할 수 없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8일 오후 9시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8차전 이란과 경기를 갖는다. 현재 4승 2무 1패 승점 14점으로 A조 1위를 달리고 있는 한국은 이날 경기서 비기기만 해도 조 1위로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대업을 목전에 둔 한국은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란 원정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설욕할 준비에 한창이다.
이날 승부에 월드컵 본선 진출의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이란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심리적으로 조금 더 여유있는 상황에서, 홈 승리의 기억을 안고 한국 원정에 나선 이란이 한국을 자꾸 자극하는 이유다.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전이 끝난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최 감독이 우즈베키스탄 취재진의 질문을 받아 "이란이 조금 더 밉다"고 재치있게 대답한 것을 확대해서 받아들이는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다.

한국의 역대 A매치 사상 경기 전 외적으로 이렇게까지 달아오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두 감독의 장외설전은 뜨거웠다. 하지만 공식 기자회견에서 케이로스 감독은 이상할 정도로 얌전했다. 미소 띤 얼굴로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으로서 한국을 존중한다. 한국의 본선진출을 축하하기 위해 이란에서부터 꽃을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케이로스 감독의 모습은 낯설었다.
장외설전에 한껏 고무돼 투쟁심에 불타던 이란 취재진들조차 당황스럽게 한 케이로스 감독이다. 이란 취재진들은 "이란이 심리전을 가라앉히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며 케이로스 감독의 강경한 대꾸를 바랐지만, 케이로스 감독은 "30년동안 스페인 일본 잉글랜드 포르투갈과 아프리카 등에서 감독을 해오면서 이런 피와 복수의 축구는 전에 경험한 적이 없다. 이제 멈춰야 한다"며 온화한 태도를 유지했다. 질문을 던진 이란 취재진이 오히려 머쓱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온화한 태도를 100%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유니폼을 준비할테니 입을 용기가 있다면 입어보라고 큰소리를 칠 때는 언제고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농담이었다. 경기 후 이란 유니폼을 드릴테니 교환하고 악수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둘러댔다. 얄미울 정도로 능청스럽다. 이날 기자회견을 국제축구연맹(FIFA) 경기 감독관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독설을 내뱉던 케이로스 감독이 하루 아침에 사람이 변했다고 보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쩌면 정말, 최 감독의 말처럼 이란이 많이 불안한가 보다. 최 감독은 "불안한 사람은 말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지면 오버하게 된다"고 촌철살인을 날렸다. "분명히 대꾸를 했고, 더 이상 말할 생각이 없다"며 케이로스 감독의 도발에 경기장에서 만나자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꾼 케이로스 감독의 찜찜한 저의가 무엇이든 간에, 결국 그라운드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것은 선수들이다. 케이로스 감독의 알 수 없는 속내를, 태극전사들이 실력으로 제압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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