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무례했던 이란의 신경전, 결국은 통했나
OSEN 김희선 기자
발행 2013.06.18 23: 49

말 그대로 거칠고 무례했던 신경전이다. 하지만 상대 감독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합성 사진까지 티셔츠에 붙이고 미소지었던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의 신경전이 제대로 통했다.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8일 오후 울산문수경기장에서 열린 이란과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서 후반 15분 레자 구차네자드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패배했다.
한국(승점 14, 골득실 +6)은 이날 패배로 조 선두를 이란(승점 16점)에 내주긴 했지만 카타르를 제압한 우즈베키스탄(승점 14, 골득실 +4)에 골득실에 앞서며 조 2위를 확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뒷맛이 영 개운치 않은 브라질행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케이로스 감독의 신경전이 제대로 통한 셈이 됐다. 이날 경기는 장외설전으로 더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역대 A매치 사상 경기 전 외적으로 이렇게까지 달아오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두 감독의 장외설전은 뜨거웠다.
발단은 최 감독이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전을 끝내고 참석한 공식 기자회견에서 우즈베키스탄 기자의 질문에 재치있게 대답하면서 시작됐다. "한국과 본선에 함께 나가고 싶은 팀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최 감독은 "지난해 이란 원정서 푸대접을 당했기 때문에 이란이 밉다"며 재치있는 대답을 내놨다.
그러나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은 이에 발끈했다. "최강희 감독이 이란에 대해 모욕감을 줬다. 이란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면서 "우즈베키스탄을 사랑하는 것 같다. 우즈베키스탄 유니폼을 선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최 감독은 케이로스 감독에 대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서 이상한 것을 배운 것 같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라면서 "케이로스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을 고향인 포르투갈에서 TV로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촌철살인의 이야기였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두 감독의 은은한 설전은 계속됐다. 비록 국제축구연맹(FIFA)이 최 감독과 케이로스 감독의 인터뷰에 대해 경기 외적으로 지나치게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거나 비하하는 일이 없도록 경기 감독관 주관으로 기자회견을 여는 등 만전을 기울였지만, 두 감독은 은근하게 서로를 자극했다.
최 감독은 "이란이 불안한 것 같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말이 많은 것이다"면서 "홈에서 경기를 절대로 내줄 수 없다. 정신력과 초반 기싸움이 승부의 향방을 가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케이로스 감독도 "피와 복수에 대한 축구를 해본적은 없다. 축구를 통해 전쟁을 펼치겠다"면서 원정 승리를 통해 브라질 월드컵 본선행을 결정 짓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화룡점정은 기자회견이 끝난 후였다. 이란의 몇몇 블로그에는 케이로스 감독이 문제의 티셔츠를 입은 사진 한 장을 찾을 수 있었다. 사진 속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 축구 관계자들로 보이는 양 옆의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영 꺼림칙한 미소를 짓고 있다. 진짜 사진인지 합성인지 불분명하나 최강희 감독이 우즈벡 유니폼을 입은 합성 사진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문제의 티셔츠 사진을)알고 있다. 사실인지 이란 측에 확인해볼 생각이다"라며 "사실로 확인될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에 제소할 수도 있다"며 케이로스 감독의 상식 이하의 행동에 불쾌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결국 격앙된 감정의 끝에 신경전에서 패한 쪽은 한국이 됐다. 참 얄미운 이란의 신경전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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