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끝난 뒤 30개 이상 차요."
굵은 빗줄기가 그치고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여름날 오후, K리그 클래식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포항의 비법을 파헤치기 위해 지난 19일 담금질 장소인 경기도 가평을 찾았다.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다. 공도 잘 차는데 외모까지 곱상하다. 자로 잰 듯한 프리킥은 여지없이 골대 구석에 꽂힌다. 흡사 '프리킥의 마술사'로 불렸던 데이빗 베컴을 닮았다. '포항의 엔진' 신진호(25)의 이야기다.

가평에서 만난 신진호는 유쾌하고 자신감이 넘쳤지만 절대 가볍지 않았다. 묵직했다. 축구 선수로서의 가치관과 목표도 뚜렷했다. 여느 선수들의 마음가짐과는 사뭇 달랐다. 말하는 모양새를 보고 떡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진호는 "팀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아쉽지만 4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면서 "팀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만족스럽다. 즐거운 축구를 하면서 선두를 지키고 있고, 다른 팀들의 본보기가 돼 기분이 좋다"며 흐뭇하게 전반기를 돌아봤다.
포항은 전반기 '순수국내파', '쇄국축구', '포항셀로나' 등의 신조어를 낳으며 승승장구했다. K리그 클래식 14경기서 8승 5무 1패(승점 29점)를 기록하며 단독 선두를 질주했다. 깨지긴 했지만 지난 시즌부터 이어오던 무패행진도 19경기까지 늘렸다. K리그에 모범사례를 제시했다.
비결이 있었다. 신진호는 "국내파라 호흡이 잘 맞는다. 감독님이 추구하는 축구가 우리가 지금 펼치고 있는 축구다. 다른 팀 선수들도 포항의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 게 사실"이라고 자랑을 늘어놨다.
신진호의 가장 큰 장점은 멀티플레이 능력이다. 다재다능함을 뽐낸다. 본업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비롯해 최전방 공격수를 제외한 공격 전방위를 소화할 수 있다. 날카로운 프리킥도 장착했다. 전반기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프리킥을 뽐냈다.
황금 오른발은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리킥은 따로 연습을 많이 해 더욱 날카롭게 가다듬고 있다. 영상도 보고 직접 시도도 해본다"는 신진호는 "킥자세 등을 보고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한다. 훈련이 끝난 뒤 30개 이상 찬다"라고 비결을 밝혔다.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단다. 신진호는 "황선홍 감독님이 '결정력이 약하다'라는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감독님이 공격수 출신이다 보니 결정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면서 "예전에는 몰랐는데 프로에 와서 골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프로에서는 기록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한다'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그래서 최근 들어 골이나 도움을 많이 올리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신진호는 지난 시즌 23경기에 출전해 1골 6도움을 올렸다. 올 시즌도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하며 14경기에 출전해 2골 2도움을 기록 중이다. 후반기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올해 목표로 했던 게 15개의 공격포인트다. 후반기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신진호는 "더블(리그, FA컵 우승) 욕심이 난다. 지난 시즌 FA컵을 통해 프로 데뷔 후 2년 만에 첫 우승을 해봤다. 평생 우승을 경험하지 못하는 선수도 있다. 나는 올해 K리그와 향후 ACL까지 우승한다면 큰 영광일 것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꼭 해보고 싶다"라고 푸른 청사진을 그렸다.
신진호의 발끝이 여물어지고 있다. 포항의 후반기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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