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의 테마토크] 지상파건 케이블이건 채널을 가리지 않고 오디션 프로그램이 판을 치고 조금만 이름 있는 기획사라면 가수 지망생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연기학원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또 사라지곤 한다. 대학의 연극영화과도 각광받는다. 바야흐로 연예인 지망생이 넘쳐나는 사회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연예인을 지망한다. 평소 연예인을 우러러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주변에서 연예인이 되는 친구를 보고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갖고 연예계의 문을 두드린다. 연예인을 신성시 하고 연예인을 희망하며 연예인을 상위 2%의 직업군으로 올려다 보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하지만 연예인이란 직업이 대중이 바라보는대로 그렇게 마냥 고결하고 부유한 것만은 아니다.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서 단칼에 밀려난 올라이즈밴드 우승민이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우린 그냥 비정규직"이라는 의미심장한 글을 올렸다. 세 단어로 이뤄진 짤막한 글이지만 최근 그의 '무릎팍도사' 하차와 이를 놓고 언론에서 바라보는 시각 등을 고려해 이 한 문장을 음미해본다면 연예인이란 직업에 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끔 만든다.

얼마전 KBS2는 월화드라마로 '직장의 신'을 내보내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비록 MBC '구가의 서'의 강세에 밀려 시청률 만년 2위에 머무르긴 했지만 이 드라마가 사회에 불러일으킨 반향과 직장인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단순히 시청률로만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났다. 직장인의 월급봉투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 아내와 자식들도 직장인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아버지 혹은 남편이 얼마나 힘들게 고군분투하고 얼마나 어렵고 서럽게 살아가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게 해준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에 의하면 대한민국 사회는 1990년대 후반 IMF사태 이후 수많은 비정규직 사원을 양산해내 어느새 계약직 800만명의 시대를 도래시켰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소위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12년의 학창시절을 낭만이 아닌 입시에 몰두한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대학 4년을 학문이 아닌 취업을 위해 소비한다.
그렇게 어렵게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고자 하는 이유는 생존의 논리다.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고정수입을 보장받으면 남들보다 편하게 살 수 있고 그래서 차근차근 미래를 설계해 결혼도 하고 2세도 낳을 수 있으며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정규직 사원에 제한된 얘기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달리 수시로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피곤한 자리다. 언제 무슨 이유로 계약해지될 줄 모르고 다행히 계약기간을 채운다고 할지라도 재계약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그들의 하루하루는 가시방석일 수 밖에 없다. 비정규직 800만 명 시대는 '삼포세대', 즉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이들의 시대를 낳았다.
우승민이 얘기하는 연예인은 바로 그 비정규직 직업군이다.
아나운서는 방송국의 정규직 직원이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명성을 쌓고 인기를 높이면 가차 없이 사표를 던지고 정규직의 제복을 벗고 프리랜서의 캐주얼로 갈아입는다. 그들은 왜 고용안정의 정규직을 버리고 고용불안정의 비정규직을 택할까?
그 이유는 아나운서가 언론인인 동시에 연예인이기도 한, 정확하게 말해 방송인이기 때문에 그렇다. 아나운서는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아무리 인기가 높더라도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상업적 광고에 출연할 수 없다. 회사의 허락 없이 높은 출연료를 받고 행사에 출연할 수도 없다. 지금은 방송국을 떠나 자유인이 된 전현무가 KBS 재직시절 행사 출연 대가로 고가의 시계를 받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게 그런 이유다.
하지만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가 되면 모든 수익활동에서 자유롭다. 광고를 찍건, 밤무대에 출연하건 자기 마음이다. 여기에 연예인의 허와 실이 담겨져 있다.
김성주는 MBC 재직시절 차근차근 지명도를 높인 뒤 전성기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프리랜서 선언을 했지만 이 자유직 초기에는 굉장히 힘들었다. 방송국 재직시절에는 고정수입이 있었지만 자유인이 된 후 일감이 별로 맡겨지지 않아 수입이 별 볼 일 없어 생활에 압박을 받는 한편 무기력증으로 힘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친정인 MBC측으로부터 괘씸죄로 낙인찍혀 친정 출연의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해 더욱 힘들었다.
물론 김성주는 현재 프리랜서 독립 후 처음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그만큼의 희생과 대가를 치러야 했었다.
대중은 연예인이라고 하면 다 이병헌처럼 예우를 받고 높은 수익을 올린다고 착각하지만 그렇게 빛나는 스타는 극히 일부분, 즉 피라미드의 꼭대기 부분에 한할 뿐 나머지 연예인은 피라미드의 하부구조처럼 많은 사람들이 저소득에 한숨 짓고 있다.
보통 톱스타로 분류되는 소수의 정상급 연예인은 영화 한 편 당 5~7억 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는다. 미니시리즈 드라마에서는 5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도 받는다. CF 출연료는 영화 출연료보다 약 10~20% 정도 많다.
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수면 위의 눈에 보이는 자그마한 빙산의 일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수면 아래의 빙산의 본체같은 대다수의 연예인은 그 드러나지 않는 모습처럼 미미한 수입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비정규직이다. 불러주는 곳이 많지 않으므로 수입이 보잘 것 없는 데다가 그나마 간신히 작품에 캐스팅된다고 하더라도 언제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을지 몰라 고용 자체도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방송연기자노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해 조합원들 중 70.5%의 방송출연 소득이 1020만원 이하였다. 연소득이 1억원을 넘는 연기자는 321명으로 7.1%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한 해 수십억 원을 벌어들이는 이른바 초고소득자는 한 유명 음료상품 이름처럼 2%에 불과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연예인이 돼 스타가 될 수 있는 확률은 1~2%밖에 안 된다는 계산이다.
로또 맞을 확률보다는 훨씬 높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안정된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할 기회보다는 훨씬 확률이 낮은 게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일이다.
우승민이라고 하면 연예인 중에서 분명히 중간 이상의 지명도와 인기도를 지닌 준스타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도 고용이 안정되지 않다. '무릎팍도사'에서 하루 아침에 이른바 '잘린' 것이 그 증거다.
대한민국 최고 MC라는 강호동도 시청률 부진으로 '달빛프린스'가 두달도 채 안 돼 폐지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물론 강호동과 우승민을 비교할 수 없지만 연예인이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이고 강호동급의 스타를 제외하곤 대부분 고용불안정에 마음 졸인다는 것은 사실이다.
일반 비정규직은 '갑'인 회사 눈치만 보면 되지만 연예계의 비정규직은 제작사(혹은 방송사)와 더불어 시청자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 한마디로 이중고다.
아무리 방송국에서 그 연예인의 캐스팅에 만족해하더라도 시청률이 부진하면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른다.
연예인도 다른 비정규직처럼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이 보장된 게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퇴직금도 없는 게 당연하다.
우승민도 자신의 직업에 대해 비정규직이라며 한탄한다. 그래서 다수의 연예인 혹은 연예 관계자는 연예인의 처우개선과 화려한 조명 뒤에 가려진 다수 연예인의 고용확대 그리고 일감이 없어진 원로 연예인들의 노후대책 문제 등에 대해 뜻있는 목소리를 내곤 한다. 하지만 그 이념 자체는 건전하지만 실현가능성은 적다. 왜냐면 여기는 자본주의 국가고 자유시장 경쟁체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예인은 자유직이다. 서로가 경쟁해야만 자신이 살아남는 철저한 정글의 법칙의 지배 하에 살고 있는 그들이다.
청소년들이여, 이래도 특별한 목적의식이나 사명감 없이 무작정 연예인을 지망할 것인가?
[언론인, 칼럼니스트] ybacchu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