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이요? 아니요. 오히려 좋아하던데요. 내용이 좋았다고요”
지난 13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한 SK 관계자는 외국인 투수 조조 레이예스(29)의 근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조금은 의외였다. 레이예스는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동안 5피안타 3볼넷 2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고 패전투수가 됐다. 완투패였다. 잘 던지고도 개인 3연패를 떠안았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법 했다. 하지만 레이예스의 생각은 반대였다.
레이예스는 내용에 의미를 뒀다. 레이예스는 이날 두산 선발 더스틴 니퍼트와 치열한 투수전을 벌였다. 총 123개의 공을 던지며 끝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이만수 SK 감독은 “8회 2사에서 투구수가 됐다고 생각했다. 레이예스에게 의사를 물어보러 올라갔는데 한 타자만 더 상대하고 내려가겠다고 하더라. 투구수가 많다고 이야기했더니 자신도 안다고 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남다른 책임감이었다.

그런 레이예스가 팀과 자신의 연패를 끊어냈다. 레이예스는 1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8이닝 동안 5피안타 7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하며 시즌 5승째를 따냈다. 지난달 25일 잠실 LG전 이후 자신의 첫 승리이기도 했다. 경기 초반부터 위력적인 슬라이더로 삼성 타자들의 헛방망이를 유도하더니 경기 중반부터는 직구 위주의 피칭으로 정면승부를 했다.
레이예스는 평소 많은 이닝을 던지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선발투수로서 팀에 공헌하는 최고의 덕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격적으로 승부하는 편이다. 투구수를 아끼기 위해서다. 등판 간격을 가리지도 않는다. 지난 4월 28일 문학 한화전에서는 불펜 등판을 자원하기도 했다. 팀 불펜 투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불펜 투구를 실전에서 대체하겠다고 먼저 의사를 밝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선발 로테이션을 거른 적도 없다. 이런 레이예스의 책임감은 기록에서도 드러난다. 5승6패 평균자책점 4.08은 겉으로 보기에 그렇게 좋은 성적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레이예스는 벌써 92⅔이닝을 던졌다. 리그 최다이닝 소화다. 80이닝 이상을 소화한 선수가 리그 전체를 통틀어 5명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레이예스의 이닝이터 기질은 빛난다. 한동안 페이스가 처지기는 했으나 최근에는 직구 구속과 제구 모두가 살아나며 다시 팀 마운드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레이예스는 19일 삼성전에서도 공격적인 투구를 펼치며 8이닝을 소화했다. 삼성 타선을 1실점으로 틀어막으며 SK 최후의 보루 몫을 톡톡히 했다. 이런 레이예스의 역투를 보며 동료들도 미안함을 느꼈을까. SK 타선은 1-1로 맞선 8회말 박정권의 싹쓸이 3타점 적시타로 레이예스에 승리 조건을 안겨줬다. 외국인 투수의 책임감은 국내 선수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레이예스가 SK 반등을 위한 작은 공 하나를 쏘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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