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140km대 중후반의 공을 던졌다면 주목을 못 받지 않았을까요”.
유망주가 자신의 가능성을 직접 실적으로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으면 그것이 곧 실력이 된다. 130km대 직구지만 60km 구속 차가 나는 초슬로커브와 제구력-배짱으로 단련된 ‘유희왕’ 유희관(27, 두산 베어스)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유희관은 지난 20일 잠실 롯데전에 선발로 나서 7이닝 동안 107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탈삼진 5개, 사사구 3개) 무실점으로 호투한 뒤 2-0으로 앞선 8회초 정재훈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2009년 데뷔 이래 가장 뛰어난 선발 쾌투였다. 그러나 정재훈이 1실점한 이후 마무리 홍상삼이 정훈에게 1타점 동점 좌전 안타를 내주며 2-2가 되어 유희관의 승리 요건도 날아갔다. 결국 두산은 연장 접전 끝 2-4로 패했다.

“내가 승리하지 못했더라도 팀이 이겼다면 좋았을 텐데 팀이 패해서 안타까웠다”라고 밝힌 유희관. 21일 잠실 한화전을 앞두고 유희관은 “뒤이어 나온 투수들이 점수를 막으려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실점이다. 나도 계투를 했는데 그 심정을 이해해야 하지 않는가”라며 대인배의 풍모를 비췄다.
하루 전 유희관의 최저 구속은 조성환을 상대로 던진 커브 76km. 이 정도면 자동차 전용 도로에서도 과속으로 적발당하지 않을 스피드다. 이 공은 볼이 되었으나 유희관은 다음 공을 105km 커브로 구사해 삼진을 뽑았다. 생애 최고 구속이 137km로 그래도 느린 편이지만 대신 제구력과 놀라운 변화구 구사력으로 생존 가치를 높인 유희관이다.
“많이 던지지는 않아요. 너무 많이 던지면 타자에게 장난을 친다는 안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어서 타이밍을 뺏기 위해 던질 뿐입니다. 요즘은 길거리를 가다가도 ‘유희관 선수다’라며 알아보시는 팬 분들이 있으시더라고요. 행복하지요. 사인해드릴 때가 행복한 겁니다”.(웃음)
과거 1군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 유희관은 ‘직구가 조금만 더 빨랐으면’이라는 바람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유희관은 “오히려 140km대 중후반의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면 내가 이렇게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의 빠르지 않은 공이 통한다는 자신감 속 유희관은 진짜 프로 투수가 되고 있다.
farinell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