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제의 프리즘] U-20팀, 22년 전 케이로스에 진 '빚' 갚자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13.06.24 07: 32

현재 터키에서 벌어지고 있는 2013 20세 이하(U-20) 월드컵 축구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한국 청소년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커졌다.
지난 22일(이하 한국시간) 새벽 터키 카이세리의 카디르 하스 스타디움서 벌어진 쿠바와 조별리그 첫 경기서 한국은 전반 7분 쉽게 선제골을 내준 뒤 줄곧 주도권을 장악했음에도 후반 6분 권창훈(수원), 후반 38분 류승우(중앙대)의 연속골로 어렵사리 전세를 뒤집고 짜릿한 2-1 역전승을 거둬 16강 진출을 위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14일 장도에 오른 뒤에도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 밀려 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청소년대표팀은 이란에 0-1로 패해 8회 연속 월드컵 티켓을 따내고도 고개를 들 수 없었던 A대표팀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18일) 후 첫 국가 대항전서 내용상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마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팀의 경기를 보듯 빠른 템포의 패스를 주고 받으며 쿠바 선수들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멋진 패싱 게임을 선보여 최근 최종예선 경기서 단조롭고 느리고 답답한 축구로 일관했던 A대표팀과 여러 모로 대조가 됐다.
초반 너무 쉽게 실점한 게 아쉬웠을 뿐 줄기차게 상대로 몰아붙이는 모습은 팬들로 하여금 역전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고 아니나 다를까 끝내 승리를 따내 밤 늦게까지 TV 앞을 지킨 팬들을 즐겁게 했다.
경기 후 팬들은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오랫만에 축구다운 축구를 봤다" 며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젊은 태극전사들의 알찬 경기 내용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16강 결승 토너먼트 진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번 청소년대표팀은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별로 관심을 못한 게 사실이나 의미있는 실적을 이미 올린 멤버들이다. 지난해 아랍에리미트연합(UAE)서 열린 아시아 U-19 선수권대회서 무패로 정상에 올라 한국에 8년 만에 우승컵을 안겼다.
8년 전 말레이시아 대회 때 한국은 이 대회를 계기로 스타로 발돋움한 박주영을 비롯 김진규 정성룡 오장은 정인환 김승용 신영록 백지훈 이강진 이요한 한동원 등 청소년대표팀 치고는 매우 화려한 진용이었다.
이런 2004년 대표팀이 조별리그 첫 경기서 이라크에 0-3으로 패해 위기를 겪어야 했던 반면 2012년팀은 이라크에 승부차기로 이긴 결승전을 제외하면 8강전서 이란을 4-1, 4강전서 우즈베키스탄을 3-1로 꺾는 등 공교롭게도 A대표팀이 이번 최종예선서 고전한 국가들을 모두 쉽게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2013 U-20 월드컵서 2009년 8강, 2011년 16강 못지 않은 성적을 목표로 삼고 있는 이광종호는 이번에 최상의 멤버를 구성하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대회에 임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당시 에이스로서 매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던 공격의 핵 문창진(포항)이 허리 부상으로 최종 엔트리서 빠진 데 이어 주전 공격형 MF인 김승준(숭실대)이 현지서 갑자기 맹장염을 일으켜 개막 직전 교체됐다.
이번 청소년대표팀은 A대표팀에 비해 미드필드진과 공격진에 장신 선수가 적다. 수비진에는 송주훈(190cm, 건국대) 연제민(188cm, 수원) 우주성(183cm, 중앙대)이 있으나 미드필더로는 정현철(187cm, 동국대), 공격수로는 김현(188cm, 성남)만이 180cm를 넘는다. 패싱게임의 축을 이루는 주전 미드필더들은 모두 170cm대 초반이라는 게 특징이다.
이광종호는 오는 25일 새벽 3시 포르투갈과 2차전을 갖는다. 1차전서 난적 나이지리아를 3-2로 꺾고 한국과 같은 승점 3을 마크하고 있는 포르투갈은 쉬운 상대가 아니다. 역대 이 대회서 한국은 포르투갈과 3번 만나 이겨보지 못했다. 한국이 첫 출전한 1979년 일본 대회서 0-0으로 비겼을 뿐 1991년 포르투갈 대회서 0-1, 1999년 말레이시아 대회서 1-3으로 졌다.
여기서 떠오르는 게 1991년 대결이다.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북한이 '코리아' 단일팀으로 출전했던 이 대회 포르투갈 감독이 바로 카를로스 케이로스 현 이란 대표팀 감독이었다. 남측에서 이임생 조진호 서동원 강철 박철 이태홍 최익형 장현호 등이 참가한 코리아는 1차전서 강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꺾고 아일랜드와 1-1로 비긴 뒤 리스본서 홈팀 포르투갈과 대결했다.
당시에는 16개국이 참가해 4개 조별리그를 거쳐 상위 1,2위 팀이 8강에 오르는 시스템이었고 3차전의 경우 지금처럼 동시에 열리지 않아 코리아(1승1무)-포르투갈(2승)전에 앞서 아르헨티나(2패)-아일랜드(1무1패)전이 같은 장소서 벌어져 2-2 무승부가 되는 바람에 양 팀은 8강 진출이 확정된 상태서 경기에 임했다.
양 팀은 8강서 만날 상대 조 1위로 브라질이 확실시 되는 상태라 조 1위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경기는 팽팽했다. 아르헨티나를 3-0, 아일랜드를 2-0으로 꺾은 전 대회 우승팀 포르투갈은 주앙 핀투, 후이 코스타, 조르제 코스타, 루이스 피구, 에밀리우 페이세, 카푸추 등 뛰어난 유망주들이 포진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그럼에도 코리아는 상대의 막강한 공격을 견뎌냈고 전반전은 0-0으로 끝날 듯했다. 하지만 전반 42분 코리아는 석연찮은 판정으로 골에어리어 안에서 간접프리킥을 내줬다. 코리아는 거의 전원이 골문 안에 들어서 있었으나 프리킥 지점 바로 뒤에서 볼을 받아 찬 파울루 토레스의 강력한 킥이 골대 상단 네트를 뒤흔들었고 결국 0-1로 패했다.
8강전서 코리아는 예상대로 브라질을 만나 5-1로 패해 탈락했고 포르투갈은 멕시코를 연장서 2-1로 이긴 뒤 준결승서 호주에 1-0으로 승리, 소련을 3-0으로 꺾고 올라온 브라질과 결승서 만나 연장까지 득점없이 비긴 다음 승부차기서 4-2로 이겨 케이로스 감독은 2연패를 달성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U-20 월드컵서 대성공으로 포르투갈 대표팀을 맡은 뒤 스포르팅 CP(포르투갈) 메트로 스타스(미국) 나고야 그램퍼스(일본) 아랍에미리트연합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팀 감독,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수석코치,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감독을 거쳐 맨유 수석코치로 복귀한 뒤 다시 자국 대표팀을 맡은 다음 2011년 4월부터 이란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모잠비크서 1953년 태어난 골키퍼 출신 케이로스 감독은 선수 시절을 모잠비크에서만 보내 월드컵 출전 경력은 없고 지도자로서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예선서 탈락한 뒤 포르투갈 사령탑서 물러났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남아공을 본선에 진출시켰으나 협회와 갈등으로 대회 직전 사임, 2010년 남아공 대회에 포르투갈을 이끌고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은 데 이어 2014년 브라질 대회서는 이란을 지휘하게 됐다.
이렇듯 화려한 지도자 경력을 자랑하는 케이로스 감독이 최근 한국과 대결을 전후해 보여준 행태는 우리를 무시하는 상식 이하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이번 U-20 월드컵서 이광종호가 포르투갈을 꼭 이겨주기를 바란다.
물론 이번 대회에 나온 포르투갈 청소년대표팀과 케이로스 감독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환갑씩이나 된 사람의 언행이 너무나도 방정 맞고 괘씸하기 때문에 이렇게 22년 전 패배와 연관을 짓게 됐다.
OSEN 대표이사 편집국장 johnamje@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